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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는 대국이어서 나의 짝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신분의 차이가 너무 나서 배우자로 맞이할 수 없음을 뜻한다. <좌씨전> 환공조에 나온다. 짝을 뜻하는 우는 우(偶)자를 쓰기도 한다.
정나라 태자 홀은 젊고 잘생기고 유능했다. 당연히 자부심도 강했을 것이다. 제나라 임금이 아끼는 딸 문강의 배필로 점찍자, 정중히 사양한다. “사람에게는 각자 합당한 짝이 있다(人各有偶). 우리 정나라는 작고, 제나라는 크다. 강대한 나라의 딸은 내 배우자로 적합하지 않다(齊大 非吾偶也). 복을 구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을 뿐(自求多福 在我而己), 대국에 기대고 싶지 않다.” 혼사는 없던 일이 됐다.
3년 뒤 외적이 제나라 변경을 침입하자 제나라가 정나라에 군사를 요청했다. 태자 홀이 군사를 이끌고 가 크게 무찔렀다. 홀딱 반한 제나라 임금은 또 홀을 사위로 삼으려 했다. 가신이 얼씨구나 싶어 재촉했다. “왕자님은 외가가 미약한데, 제나라 사위가 된다면 후계는 물어보나 마나”라고. 홀은 이번에도 거절한다. “3년 전 아무 관계가 없을 때도 사양했는데, 전쟁에 좀 이겼다고 제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는다면 내가 사심이 있어서 제나라를 구한 셈이 되지 않겠소?”
제대비우의 고사는 여기서 유래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력이 미약했던 홀은 결국 다른 왕자와의 경쟁에서 밀려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옹립되었으나 그의 강한 성품에 불안을 느낀 권신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나라 간의 결혼은 대개 정략결혼이다. 홀이 애초에 강대국 제나라의 사위가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대 사람들은 홀에 대해 “자기의 깨끗함만 생각했을 뿐 나라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평한 기록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 개천에 용 난 듯이 출세한 젊은이가 부잣집 사위가 되는 일이 고래로부터 흔했다. ‘개천파’ 중에도 공적인 일에서만큼은 처가에 신세 지지 않으려 애쓴 사람들이 많았겠으나, 대체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손가락질받지 않겠다”는 ‘자의식’이 너무 지나친 바람에 결과적으로 인생 경영에 실패한 사례 또한 얼마일까? 애초부터 그런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 인생은 또 성공적이었을까?
태자 홀이 장가들기를 사양하는 바람에 제나라 공주 문강과 결혼한 노나라 환공은 문강 때문에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결과로 시비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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