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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 소설가 나카지마 아쓰시의 단편 <명인전>은 중국 고전 <열자>에 나오는 우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야기다.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 기창은 활쏘기의 명인이 되려 한다. 스승은 이 위험한 제자를 깊은 산중에 은거하는 자신의 스승에게 보낸다.
기창은 양처럼 순하게 생긴 산중 노인 앞에서 날아가는 철새를 연속으로 떨어뜨려 실력을 과시한다. 그러자 노인은 겨우 발 하나 올려놓을 수 있는 천길 벼랑 끝에 서서 활을 쏘아보라고 한다. 오금이 저려 시위조차 당기지 못하는 기창을 내려오게 한 노인은 흔들거리는 작은 바위 위에 미동도 없이 서서 하늘을 나는 매를 응시한다. 비행하던 매가 문득 천길 아래로 떨어졌다. 바로 ‘불사지사’(不射之射)였다. “쏘지 않음으로 쏜” 것이다.
‘사지사’(射之射)의 고수를 자부하던 기창은 노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9년 동안 은거하다 하산한다. 돌아온 그를 조나라 사람들은 활의 명인으로 떠받들었다. 정작 그가 활 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건만, 깊은 밤 구름 속에서 전설의 고수들과 기창이 활쏘기를 겨뤘다거나, 그의 집 담을 넘으려던 도둑이 어디선가 날아온 한줄기 빛을 맞아 쓰러졌다고 자백해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기창도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한 지인이 자기가 수집한 진기한 활을 걸어놓고 기창을 연회에 초대했다. 잔치가 끝날 무렵 기창이 진정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주인에게 물었다. “저기 걸려 있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고금무쌍의 활쏘기 명인이 드디어 활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악사는 비파 줄을 끊고, 화가는 붓을 감추고, 장인은 줄과 자를 손에 쥐는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 우화의 근저에는 무위(無爲)의 철학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 않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를 지닌 인간은 무위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유가는 유위(有爲)를 전제로 무위를 말한다. 바로 중용이다. 사지사와 불사지사의 사이 어디쯤에 ‘도’가 있다는 사상이다. 장자도 ‘재여부재지간’(材與不材之間)을 말했다. 쓸 만한 재목이 먼저 베어지지만, 울지 못하는 기러기가 먼저 요리상에 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는 ‘사여불사지간’(似與不似之間)을 설파했다. 화가로서 ‘같음’(似)은 세상에 아첨하는 짓이고, ‘같지 않음’(不似)은 세상을 속이는 것이라고. 예술의 묘(妙)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것이라고.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