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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득(難得)은 ‘얻기 어렵다’이고, 호도(糊塗)는 ‘풀칠하다’이다. 우리말에서 호도는 ‘풀칠로 한 꺼풀 가려 제대로 알 수 없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어리석다, 바보 같다는 뜻으로 쓰였다. 즉, 난득호도는 ‘어리석어 보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자기를 낮추고 남에게 모자란 듯이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현명한 처세가 된다는 중국인의 오래된 격언이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 청나라 때의 유명한 서예가이자 화가인 정섭의 휘호에서 비롯되었다. 호가 판교인 정섭은 중국 남부 무역도시 양저우의 개성파 화가 8인을 지칭하는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일세를 풍미한 대예술가였다. 그가 쓴 난득호도의 내용은 이렇다.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게 보이는 것도 어렵다.(聰明難 糊塗難)/ 총명함을 잃지 않은 채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두드러지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도 내려놓으라.(放一著 退一步 當下心)/ 이것이 어찌 훗날의 복 받기를 도모하는 일이 아니랴.(安非圖後來福報也)”
난득호도는 일종의 역발상이다. 잘난 체하고 아는 체를 일삼다가는 다른 이의 미움을 사서 고난을 겪기 십상이다. 잦은 전란과 권력 부침이 심한 시기에는 말 한마디 잘못으로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지혜가 무엇이겠는가? 있어도 없는 듯이, 알아도 모르는 척 바보처럼 보이는 것이 안전하다는 교훈이 대를 이어 전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집 대문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다섯 자를 써붙이는 것만큼이나, 침실 머리맡에 난득호도 넉자를 걸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그 의미를 곱씹었다고 한다.
본래 이런 의미로는 ‘화광동진(和光同塵), 도광양회(韜光養晦)’ 같은 사자성어가 유명하다. “세상의 티끌 속에 숨어서 빛을 예비하라”, “빛을 드러내지 말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것은 사실 난득호도의 정신이 배후에 숨겨놓은 깊은 뜻이다. 지식과 예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지약우(大智若愚), 대교약졸(大巧若拙) 등이 그것이다. 큰 기교는 오히려 졸렬해 보이고, 큰 지혜는 겉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법이다.
요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한창 전시 중인 중국 근대의 대화가 치바이스의 그림에도 어딘가 모르게 어린아이가 들어 있다. 치바이스의 영향을 받은 우리 화가 운보 김기창도 말년에 바보 산수를 그렸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만년에 바보 철학을 예찬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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