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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와 인연, 30대 창업가의 2인3각

마리몬드와 두손컴퍼니의 동반성장 2013년 ‘H-온드림 펠로’ 인연 계기

등록 : 2017-09-07 11:49 수정 : 2017-09-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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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5일 종로구 장사동 아세아상가 3층에 있는 청년 창업초기기업 육성 공간 ‘H-창의허브 SE:클라우드’에서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왼쪽)와 박찬재 두손컴퍼니 대표가 위안부 할머니 휴먼브랜딩 프로젝트 ‘꽃할머니’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마리몬드는 열한번째 ‘꽃할머니’로 선정된 안점순 할머니에게 험준한 곳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용담꽃을 헌정했다. 꽃말은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2015년 초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 케이스가 방송을 타며 화제가 됐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그린 압화(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를 패턴으로 활용한 제품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작사인 마리몬드는 이른바 ‘대박’이 났다. 마케터와 디자이너까지 모든 직원이 포장과 배송에 매달려도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윤홍조(31) 마리몬드 대표는 “기존 업무에 차질을 빚을 정도라 우리 물류를 대신 처리할 업체가 필요했는데, 기왕이면 기업의 성과가 사람에게 돌아가는 곳에 맡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택한 업체가 바로 두손컴퍼니였다. 홈리스(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2012년 창업한 이 회사는, 기업체의 광고를 담은 ‘종이 옷걸이’를 개발해 세탁소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마리몬드의 물류를 같이 운영하자’는 윤 대표의 ‘뜬금없는’ 제안을 받은 박찬재(30) 두손컴퍼니 대표는 고민하다 2주 뒤 물류센터를 조그맣게 시작했다. 막상 문을 열자 여러 창업초기기업(스타트업)이 연락을 해왔다. 박 대표는 “창업초기기업은 물류센터는커녕 담당 직원도 없고 차량 운영도 어렵기 때문에 물류가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창업초기기업을 위한 물류 서비스도 없었고, 우리는 배송만 하는 게 아니라 보관부터 제품 관리, 검수, 재고 관리까지 해줬다. 한마디로 기업이 제품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2015년 2억원이던 두손컴퍼니의 매출은 지난해 14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올해는 40억원을 예상한다. 지난 8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약 1750㎡(520평) 규모의 창고로 확장 이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출에서 마리몬드 비중이 가장 크다. 박 대표는 “마리몬드의 성장과 함께하면서 물류업에서 새 비전을 찾았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그룹·현대차정몽구재단과 사단법인 ‘씨즈’ 등이 청년 사회혁신가의 발굴과 성장을 돕기 위해 2012년부터 개최해온 ‘H-온드림 오디션’에 참가해 ‘2013 H-온드림 펠로’로 함께 선정됐다. 그때 사무실도 없이 카페를 전전하고 있었던 박 대표는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을 먼저 생산하고 뒤에 돈을 받는 식이었는데, 버틸 자금이 없었다. H-온드림의 지원이 없었다면 망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억원 가까운 사업비와 경영교육 등을 지원받았고, 무엇보다 윤 대표 등 다른 사회혁신가들을 만나 협업을 도모할 수 있었다.

윤홍조(왼쪽)·박찬재 대표는 2013년 선정된 ‘H-온드림 펠로’로 첫 인연을 맺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마리몬드도 가장 중요한 패턴 디자인을 외부 디자이너의 재능기부로 해결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H-온드림의 지원을 받은 윤 대표는 가장 먼저 아트디렉터 영입에 나섰다. 급여 조건이 열악한데도 아트디렉터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위안부 할머니를 피해자가 아니라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로 조명하고 싶다”는 윤 대표의 말이었다. 그래서 마리몬드 디자이너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찾아뵙고 말씀을 들으면서 느끼는 점을 스케치한 뒤 패턴을 만드는 식으로 작업한다. 2014년부터는 할머니의 일생을 닮은 꽃을 골라 헌정하는 휴먼브랜딩 프로젝트 ‘꽃할머니’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24일 열한번째 ‘꽃할머니’로 선정한 안점순 할머니에게는 험난했던 삶처럼 험준한 곳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용담꽃을 헌정했다.


올 매출 100억원을 예상하는 마리몬드는 국내를 넘어 국외를 바라본다. 이미 중국,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 마리몬드 상품을 알음알음 사고 있다. 한류 스타들을 통해 마리몬드의 상품을 알게 된 뒤 역사적인 상처에 공감하는 이들이다.

연말까지 아시아 판매 조직을 꾸려 내년부터 온라인과 모바일 기반으로 국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 브랜드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분들을 기억하고 존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할머니들의 바람을 받든 마리몬드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귀함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익명의 고민 상담자에게 공감편지를 보내는 마리레터(maryletter.com) 서비스와 학대 아동 예방 캠페인을 시작했다.

“윤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다’고 말한 적이 없다. 늘 ‘동반자’라고 표현한다. 항상 `왜 하는지'가 분명해 같이 일하면서 많이 배

운다”는 박 대표는 “우리도 단순히 제품을 포장하고 보내는 게 아니라 이 제품이 어떤 제품이고,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

고, 좋은 분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두손컴퍼니는 내년 초 홈리스(노숙인) 등 취약계층의 취업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세울 계획이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홈리스에게 일자리가 생기면 문제가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10년 동안 일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출근하면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취업 앞 단계에 교육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교육기관이 없는 게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품 발매를 준비하는 제조 창업초기기업을 위해 ‘두윙’이라는 전담 배송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윤 대표는 “두손컴퍼니의 ‘두윙’은 마땅한 물류 서비스가 없었던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리몬드도 좋은 철학을 가진 후배들에게 합리적인 라이선스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의 과감한 베팅으로 성장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사회혁신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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