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글자를 아는 것이 근심을 부른다’는 말이다. 지식인들이 겪는 갈등과 고뇌, 환란을 뜻하기도 한다. <삼국지>가 출전이다.
위·촉·오 세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에는 훗날 서예의 달인이 된 왕희지에게 글씨를 가르친 지식인 부인이 있었다. 그 위부인의 아들 서서는 촉나라 유비의 책사였다. 조조는 위부인에게 서서를 위나라로 귀국시킬 것을 종용했으나, 위부인은 아들의 일이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조조는 계략을 꾸며 위부인의 명필을 조작한 편지를 서서에게 보낸다. 서서는 그것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안위가 걱정돼 위나라로 돌아오고 만다.
아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위부인이 탄식했다. “이래서 여자가 글을 안다는 것이 화를 부르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구나(女子識字憂患).” 이후 위부인의 말은 ‘여자가 글을 알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강변하는 데 악용되었으나, 점차 ‘식자우환’ 넉자만 남아 지식이 오히려 근심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일컫게 되었다.
옛날부터 정쟁과 전쟁에 휘말려 식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당하거나 훼절을 강요받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때로는 아집과 오만, 혹은 비범함으로 인해 시대와 불화를 겪다가 비운을 자초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도 인생의 어디쯤에서 한번쯤 식자우환의 비애에 젖었을 것이다. 대문호 소동파마저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 그저 이름만 쓸 줄 알면 그칠 일이다”라는 처연한 시구를 남길 정도였으니.
우리나라에서도 당쟁으로 집안이 망하거나 사약을 받게 된 선비가 자식들에게 글을 못 배우게 하거나 과거를 보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일이 적지 않았다. 을사사화 때 죽은, 명종 때의 부제학 임형수는 어린 아들에게 글을 배우지 말라고 유언했다가, 사약을 받기 직전에 다시 아들을 불러 “아주 안 배우면 무식한 사람이 되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라”고 고쳐 당부하고 죽었다.
‘식자우환’을 떠올린 것은 엉뚱하게도 마광수 교수의 비극을 듣고서다. 25년 전 벌어진 마 교수 구속 사건을 되돌아보면, 당대 지식인들의 욕망, 위선, 정의감 같은 감정이 격렬하게 충돌했음을 느낄 수 있다. 젊은 명문대 교수의 일탈, 그것을 사회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검찰 간부, “3000권의 책을 읽은 탓”에 마광수 구속의 총대를 멘 수사 검사…. 그들 모두 식자라는 자의식에 너무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마 교수의 명복을 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