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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목욕차량 5년간 운행
낡고 고장 잦아 불편했으나
시민참여예산 민관예산협의회에서
필요성 인정해 예산 두배 책정
지난 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2017 시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에서 박원순 시장과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이 참여예산 공 굴리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서울시, 서영사랑나눔의복지회 제공
“목욕차 때문에 살맛이 난다. 한달에 일곱번쯤 이용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쪽방촌에 목욕할 곳이 없어 불편했다. 5년 전 처음 할 때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큰 도움이 된다. 비누도 있고 수건, 옷, 양말도 줘서 참 좋다. 깨끗이 씻고 나면 기분도 좋아진다.”(50대 남성)
“전에는 큰 깡통에 물 받아서 노숙인들 가는 화장실에 들어가 문 잠가놓고 씻었다. 목욕차에서 씻으면 제대로 씻을 수 있다. 남녀 따로 할 수 있는 점도 좋다. 목욕차가 너무 낡아 고장이 나서 수리하느라 못 올 때도 있다. 새 차로 바꿔줬으면 좋겠다.”(60대 여성, 내년도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사업 제안 영상에서)
김금상(72)씨는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의 이동목욕차량 교체에 대한 바람을 담아 지난 4월 내년도 서울시 시민참여예산 사업에 제안했다. ‘멈출 위험에 처해 있는 노숙인 이동목욕 버스를 달리게 해주세요! 달려라 샤워트럭’이라는 그의 제안은 당당히 우수 제안 사업으로 뽑혔다.
사단법인 서영사랑나눔의복지회 회장을 맡은 김씨는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들의 자활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동목욕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2년 중고로 2.5톤의 탑차를 1900만원에 샀다. “처음엔 이용자가 하루 1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금세 두세배 늘었다. 옷과 먹을거리를 함께 챙겨주면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단법인 서영사랑나눔의복지회 회장을 맡은 김씨는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노숙인들의 자활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동목욕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2년 중고로 2.5톤의 탑차를 1900만원에 샀다. “처음엔 이용자가 하루 1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금세 두세배 늘었다. 옷과 먹을거리를 함께 챙겨주면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을 위한 이동목욕차량이 너무 낡아 이를 교체하는 사업이 2018 참여예산 우수 제안사업으로 뽑혔다. 서울시, 서영사랑나눔의복지회 제공
2013년부터는 영등포구청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업과 연결해줘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트럭이 늘 골칫거리였다. 워낙 오래돼 자주 멈춰 섰고, 배수가 잘 안 돼 냄새도 심하게 났다. 지난해 행정자치부의 공모사업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올해 심기일전해서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사업의 문을 두드려서 마침내 차량을 바꿀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사업금액이 애초 제안(1억3000만원)보다 더 늘어난(2억6000만원) 것은 이 사업을 사람들이 인정해 준 덕분이라 생각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시민참여예산에서 제안한 금액보다 더 많은 예산을 받게 된 데는 올해부터 개선된 예산제도의 영향 때문이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은 사업의 전문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민관예산협의회를 처음 구성해 심사를 심도 있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회에서는 서울시 담당 부서 공무원,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해 해당 분과의 시민참여예산위원들의 심사를 지원했다.
이동목욕차량 제안사업을 심사한 복지분과 예산위원들은 영등포역 현장 확인을 다녀온 뒤 복지정책과, 자활지원과의 담당자들, 복지전문가들과 함께 회의를 했다. 현재 노숙인들이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따로 이동목욕차를 운영하는 게 효율적인지 논의했다. “쪽방처럼 목욕시설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노숙인 시설에 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목욕하고 옷도 갈아입으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제안자 김씨의 설명이 설득력을 얻었다.
예산위원들은 이동목욕차량 제안사업이 노숙인들 위생 관리뿐만 아니라 상담을 지원해, 이들이 노숙인 재활시설로 가거나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긍정적인 면에 주목했다. 사업을 더 키우자는 데 의견이 모였다. 신동웅 복지 민관예산협의회 회장은 “추가로 한대를 더 마련해 다른 지역에서도 사업을 하기로 정했다. 시의 담당 부서에서도 계속 사업으로 이어갈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내년 시민참여예산사업 제안은 지난 3~4월 40일간 이뤄졌다. 모두 3432건(8329억원)을 접수했다. 시민투표를 거쳐 이 가운데 총 766건(593억원)의 사업이 지난 2일 ‘2017 시민참여예산 한마당 총회’에서 최종 선정됐다. 선정사업을 보면, 많은 시민이 자치구 내 지역 기반 1억원 미만의 시민밀착형 소규모 사업을 선호했다. 광역시 차원의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 설치사업(2억1000만원), 한강공원 그늘쉼터 조성(8억8000만원), 여성이 안전한 공중화장실 설치(10억원) 사업 등 서울시 전체 시민이 혜택을 받는 사업이 시민투표 득표수 1, 2, 4위를 차지했다. 시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593억원은 11월 중 서울시의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내년에 집행된다.
한마당 총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예산은 시민의 것이다. 시민 스스로 예산을 어느 곳에 써야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연말쯤 서울시 온라인 플랫폼을 열어 세계 최초로 주민 결정 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마을 단위에서 주민 욕구와 소망에 맞는 작은 사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내년에는 참여예산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