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숲에서 마음껏 뛰어논 아이들, 잘 먹고 잘 잔다

서울시가 새로 만든 유아숲 산림치유 프로그램 ‘놀이 요요’ 체험기

등록 : 2017-11-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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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웅덩이 만들며 오감 체험

도토리·솔방울로 상상력 발휘

부모는 맨발로 가을숲 밟으며 명상

내년 여러 유아숲으로 확대 예정

서울시가 아이와 부모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해 유아숲체험장을 활용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었다. 지난 3일 종로구 삼청공원 유아숲체험장에서 ‘놀이 요요’를 진행하는 안명신 산림치유지도사(가운데)가 아이들과 함께 흙 놀이터에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 제공

“아이들은 흙 놀이터로 물놀이하러 갈 건데요, 부모님들은 가을 숲을 산책하고 오세요.”

안명신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안고 난리가 났다. 마치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흙 놀이터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뛰어놀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지난 3일 종로구 삼청공원 유아숲체험장에선 서울시의 산림치유 프로그램 ‘놀이 요요’가 진행되고 있었다.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생 10명과 부모 10명이 참가했다. “흙 놀이터에 웅덩이를 만들어서 첨벙첨벙 놀이를 할 거예요. 개미나 거미가 들어가면 구출해주고. 나뭇잎으로 배도 만들어요.” 안 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아이들은 플라스틱 삽과 모종삽으로 흙을 판 뒤 물을 부었다. “아파트를 만드는 것 같아요.” “(물과 섞인 흙이) 커피 같아요.” 아이들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안 지도사가 숲에서 주워온 도토리를 페트병에 넣고 흔들었다. “어떤 소리가 나죠?” 일부러 소리를 내서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응원할 때 박수 치는 ‘대~한민국’ 소리 같아요.” 아이들의 상상력은 늘 예상 밖이다. “이 도토리를 웅덩이에 심으면 싹이 날까요?” 도토리를 처음 쥔 아이들은 코로는 냄새를 맡고, 손으로는 흙의 촉감을 느꼈다. 도토리를 웅덩이에 묻은 아이들은 주위에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꽂기 시작했다. 누구는 “성”이라고 했고, 누구는 “냉동창고”라고 했다. 도토리를 저장해뒀다는 뜻이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날씨가 개어 다행”이라고 말을 건네자 김현양 삼청공원 유아숲지도사는 “아니다. 우비를 입고 웅덩이에서 물장구치고 놀려고 했는데, 비가 안 와서 너무 아쉽다. 비가 오면 못 보던 곤충도 많이 올라오고 탐색할 게 훨씬 많아진다. 폭풍우 친 다음 날에는 평소에는 만질 수 없는 나뭇가지까지 다 떨어져 있어서 놀잇거리가 풍부하다. 비 오는 소리 듣는 것도 오감 자극에 좋다”며 “숲 지도사들 사이에 ‘나쁜 날씨는 없다. 나쁜 복장만 있을 뿐’이라는 명언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삼청공원 유아숲체험장에서 가족 소통 프로그램 ‘숲 톡톡’ 참가자들이 가을 숲을 즐기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아이와 부모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해 유아숲체험장을 활용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었다. 삼청공원과 양천구 신정산 우렁바위 유아숲체험장에서 10~12월 7주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2시간 동안 이뤄진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아이의 분노·짜증 등 감정조절을 위한 프로그램 ‘놀이 요요’, 일요일에는 부모·자녀가 함께하는 가족소통 프로그램 ‘숲 톡톡’이 진행된다. 곽동훈 서울시 푸른도시국 자연생태과 주무관은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만지고 뒹굴고 체험하는 게 목적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놀면서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하고 협동하며 성장한다. 산림치유지도사는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부모들은 신발 양말 다 벗고 맨발이었다. “여태까지 신발을 신고 문명 세계에 갇혀 생활하셨는데, 맨발로 마사토를 밟으며 발바닥의 감각을 느껴보세요. 흙과 낙엽을 밟으며 발바닥으로 가을을 흡수하는 겁니다.” 이풍호 산림치유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맨발로 걷자 “아이고 아파!” 신음부터 나왔다. 다들 어색한 느낌인지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야”, “똥 밟는 것 같아” 농담을 나누며 와하하 웃었다. 그것도 잠시, 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가을 숲속으로 걸어가자 말이 없어졌다.

“좋다!” 정적 끝에 누군가 내뱉었다. “그렇죠. 감촉이 좋아서 힘든 줄도 모르겠네요.” “애들 없이 어른들만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언덕 위에 멈춰 서서 가을 숲을 바라보자 “이렇게 예뻤나!” 감탄사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정현준(5)군의 엄마 김현경(39)씨는 “아이와 분리되니까 비로소 꽃이 보인다”고 말했다. “현준이가 처음 보는 친구들인데도 어울려 노는 게 좋은가봐요. 평소에는 흙장난 못 하게 하는데, 여기서는 마음껏 만질 수 있으니까 좋아서인지, 집에 간 뒤에도 빨리 모임에 가자고 일주일 내내 기다렸어요. 저도 좋아요. 밖에 나올 기회가 잘 없고, 가을이 온 것도 모르고 지냈는데…. 자연, 가을, 여기 와서야 온전히 느끼고 있네요.”

곽 주무관은 “부모는 숲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게 명상이자 치유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오감을 자극하는 게 명상이다. 여기서 마음껏 스트레스를 푼 아이들은 집에 가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말도 잘 들어서 부모와 관계도 좋아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 봄·가을에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시내 여러 유아숲체험장으로 확대해서 운영할 계획이다. 4~6월 봄맞이 프로그램은 2, 3월께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누리집(yeyak.seoul.go.kr)에서 할 수 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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