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매경한고’의 출전?

매경한고(梅經寒苦) 매화나무 매, 지날 경, 찰 한, 괴로울 고

등록 : 2017-11-1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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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한고는 ‘매화꽃은 추위의 고통을 거쳐 핀다’는 말이다. 고난을 극복하고 뜻한 바를 성취한다거나, 고난을 당해봐야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비유로 쓰인다. 비슷한 말로는 중국 고전 <세설신어>에 나오는 ‘정금백련’(精金百鍊)이 있다. 쇠는 백번을 두드려야 단단해진다, 수없는 단련을 거쳐야 좋은 쇠가 된다는 말이다. 이 역시 역경을 통해 더욱 큰 성취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과 회담할 때, 사드 문제로 악화된 양국 관계가 다시 호전되기를 바라는 덕담으로 인용해 널리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한국에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에도 매경한고(梅經寒苦)라고, 봄을 알리는 매화는 추위의 고통을 이겨낸다는 사자성어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한겨레>11월12일치)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매경한고의 출전을 잘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사자성어라고 했지만, 여기저기 고사성어집을 뒤져보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출처를 찾지 못했다. 몇몇 언론에서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온다고 했으나, <시경>에는 이런 사자성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중국이 아니라 고 신영복 선생의 글씨에서 매경한고를 찾을 수 있었다. 신영복은 ‘백련강’(百鍊剛)이란 한문 휘호의 제시(題詩)에서 한문과 한글로 “정금백련출홍로(精金百鍊出紅爐)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좋은 쇠는 뜨거운 화로에서 백번 단련된 다음에 나오고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은 후에 맑은 향기를 발합니다”라고 쓰고 있다.

다른 서예가들도 ‘매경한고발청향 인봉간난현기절’(人逢艱難顯其節)이란 칠언절구를 즐겨 쓴다. ‘인봉간난현기절’은 “사람은 역경을 만나서야 그 절개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 칠언절구를 사자성어로 축약한 듯한 ‘한고청향(寒苦淸香) 간난현기(艱難顯氣)’는 좌우명으로 많이 쓰인다. 의미는 시와 같으나 시에서는 절개(節)가, 사자성어에서는 기운(氣)이 강조되고 있다.

이렇듯 매경한고는 시와 성어로 형태를 바꿔가며 쓰이고 있으나 정작 출처를 밝힌 곳이 없다. 짐작건대 매화에 대해 쓴 글귀가 여러 형태로 조합돼 세간에 퍼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매경한고가 중국의 사자성어가 아니라면 대통령 연설 준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해본다. 한시 등 고문에 두루 밝은 분이 수고를 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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