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옷을 입은 신당동 전봇대

신당동주민센터, 주민공모 사업으로 성동글로벌경영고에 옷 제작 맡겨

등록 : 2017-11-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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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20개의 전봇대에

치마·저고리, 와이셔츠 등

인근 학교 패션과 학생 20명 참가

미래의 디자이너에게 기회 제공

성동구 다산로33길의 전봇대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었다. 성동글로벌경영고 학생들이 만들어 입혔다.

서울 중구 신당동주민센터와 광희문 사이의 다산로33길. 느릿느릿 걸으면 10분쯤 걸리는 이면도로다. 서울의 여느 주택가와 풍경이 다를 게 없는 이 길에 지난달 말 독특한 볼거리가 생겼다. 도로에 서 있는 20개의 전봇대가 일제히 ‘옷’을 입은 것이다 .

빨간 넥타이를 맨 체크무늬 셔츠, 치마와 저고리를 갖춘 여성 한복, 와이셔츠까지 입힌 남성 정장, ‘쓰레기 금지’ 글귀가 쓰인 포스터 모양의 천 등 디자인이 가지가지다. ‘담배꽁초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귀가 쓰인 천은 감시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어설퍼 보이기도 하는 이 옷들은 인근 성동글로벌경영고 패션과에 다니는 1~2학년생 20명의 ‘작품’이다. 학생들은 신당동주민센터가 진행한 ‘전봇대 패션쇼’ 사업에 참여해 지난달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


패션과 2학년인 정란주(17)양은 ‘쓰레기 금지’ 포스터를 만들었다. 란주양은 “처음부터 글로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전봇대 근처의 패널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문구가 있어 활용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방수원단을 쓰지 못한 게 아쉽지만 아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패션과 1학년 정소영(16)양은 보라색과 파란색 치마로 전봇대를 꾸몄다. 소영양은 “어두워도 밝게 빛나는 존재를 표현하고 싶었다.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고,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 보람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전봇대 패션쇼’ 사업은 중구가 지난 3월부터 진행한 ‘헬로 마이 폴(pole, 막대기)’ 사업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중구는 청구동주민센터의 제안을 받고 관내 청소년 29명에게 청구동 골목의 전봇대 18개를 분양한 뒤, 학생들이 옷을 입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구동 인근의 신당봉제소공인 특화지원센터 등 전문가들이 학생들의 작업에 손을 보탰다. 그 결과 청구동 골목이 깔끔하고 개성 넘치는 곳으로 변신해 호평을 받았다.

신당동주민센터는 지난 9월 중구의 마을공모 사업 지원을 받아 성동글로벌경영고에 옷 제작을 맡겼다.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려는 뜻에서다. 대신 신당동 일대의 패션·봉제업체 직원 등 전문가 20명을 소개해 일대일로 학생들을 돕도록 했다.

학생들은 지난달 수업이 끝난 뒤 학교 작업실에 모여 구슬땀을 흘렸다. 학생들을 지도한 안영진 교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옷의 콘셉트를 정하고 제작까지 주도적으로 했다. 그 과정에 패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협력한 것은 특히나 소중한 경험”이라고 밝혔다.

신당동주민센터는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주민 120명이 가입해 있는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 소통방 등에서 투표를 벌여 상도 주었다. 1~3등 상을 뽑았고, 나머지 학생 모두에겐 참가상을 줬다. 문성수 신당동 동장은 “옛 전봇대엔 광고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주변에 쓰레기도 많아 지저분했는데 옷을 입으면서 훨씬 깨끗해졌다. 다른 골목 주민들도 전봇대에 옷을 입혀 달라 요청한다”고 말했다. 신 동장은 앞으로도 마을공모 사업으로 옷을 교체하고 관리에도 신경 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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