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100원짜리 4년 정성, 사람을 껴안다

영진종합전자 김용환 대표, 250만원 모아 서대문구 ‘100가정 보듬기’ 기탁

등록 : 2017-12-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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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콘덴서 박스 모금에 활용

박스 가져가는 대신 100원씩 모금

4년간 모금액에 250만원 보태

500만원 서대문구 기탁

김용환 영진종합전자 대표(왼쪽)가 지난 7일 종로구 장사동 매장에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에게 ‘100가정 보듬기’ 사업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서대문구 제공

지난 7일 종로구 청계천 옆 장사동 전자부품 골목의 영진종합전자 매장. 김용환(67) 대표가 나무상자 모금함을 열자 100원, 500원짜리 동전이 와르르 쏟아졌다. 1000원짜리 지폐 사이로 1만원짜리 지폐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지난 4년 동안 가게 문 쪽에 놓아둔 모금함에서 나온 돈은 250만원쯤 됐다. 김 대표는 여기에다 자신의 후원금을 보태 모두 500만원을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에게 전달했다. 서대문구가 벌이고 있는 나눔 사업인 ‘100가정 보듬기’에 보내는 성금이다. 김 대표는 “4년 동안 250만원이 모였다니 솔직히 놀랍다. 100원의 힘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얘기한 ‘100원의 힘’이 무슨 뜻인지는 모금함의 글귀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모금함에는 ‘박스 1개당 100원입니다. 불우 이웃을 돕고자 하오니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의 가게에서 유통하는 콘덴서 포장 박스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모금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는 박스를 가게 앞에 쌓아놓은 뒤 박스를 가져가는 사람이 100원을 넣을 수 있도록 모금함을 놓았다.


김 대표는 “작은 정성을 모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하니 마음이 후련하고 좋다. 이제 텅 빈 박스를 다시 열심히 채워야겠다”고 했다.

김 대표가 성금을 낸 100가정 보듬기 사업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법적 요건이 맞지 않아 공적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 한부모·조손·다문화·홀몸노인 가정 등의 자립 기반 마련을 돕는 사업이다. 테레사 수녀의 ‘나는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 껴안을 수 있을 뿐입니다’라는 말이 출발점이 됐다.

2011년부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한해 평균 70가정씩 찾아내 지역주민, 사업체, 종교단체 등으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후원금은 26억원에 이른다.

지난 6일에는 연세대학교의료원이 ‘500호’ 결연자가 되는 결실을 보았다. 의료원은 교직원의 급여 1%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와 지역사회 소외계층에 기부하는 ‘세브란스 1% 나눔운동’ 10돌을 기념해 후원자가 됐다. 의료원은 한부모 가정 2곳에 2년 동안 매월 20만원씩 모두 1000만원을 후원할 예정이다. 의료원은 2015년부터 ‘100가정 보듬기’에 참여해 이미 6가정을 후원하고 있다.

이 사업은 현재 결연이 된 500가정 중 250가정은 후원이 진행 중이며, 나머지 250가정은 후원이 종결됐다. 결연가정은 한부모 가정과 조손 가정이 55%로 전체의 절반이 넘으며, 노인 가정 17%, 청소년 가정과 다문화 가정 각각 3% 등이다. 단순히 후원금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결연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전문 사례관리사가 각 가정의 문제들을 꼼꼼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사례관리 서비스도 한다.

사업이 확산되면서 도움을 받은 가정이 다른 어려운 이웃에게 힘을 보태는 아름다운 사례도 있다고 한다. 2013년 전기가 끊길 정도로 위기에 빠졌던 한 가정은 후원 연계로 자립에 성공한 뒤, 지난해 8월부터 한부모 가정에 한달 1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한정된 예산으로 복지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민간 참여로 선진국형 기부문화가 뿌리내렸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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