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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사회참여 교육 실시
국립중앙박물관 도시락 공간 이끌어내
성과 날 때까지 기다림이 중요
아이들 긍정적 변화에 보람 느껴
지난달 20일 강북구 서울삼양초 6학년 5반 교실에서 열린 바자회에서 배성호 교사가 반 아이들과 떡볶이를 나눠 먹고 있다. 이날 바자회 수익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추진위에 기부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생활 속 불편을 찾아 하나씩 바꿔가는 초등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10년째 초등학생들과 사회참여 활동을 펼쳐오며 그 기록을 책으로 펴내는 교사가 있다. 배성호(43) 서울삼양초 교사다. 그가 최근 <안전지도로 우리 동네를 바꿨어요!>를 펴냈다.
“3년 전 서울수송초 주변을 반 아이들과 살피면서 동네의 위험한 곳을 바꾼 이야기인데, 직접 쓰기로 했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제가 동화로 만들었어요. 제가 당한 거죠.” (웃음)
그는 그동안 가르친 아이들의 사회참여 활동 과정을 담은 ‘내가 바꾸는 세상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첫 번째 책 <우리가 박물관을 바꿨어요!>는 2012년 서울수송초 6학년 아이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람객을 위한 실내 도시락 공간을 마련하도록 요청하고, 결과를 끌어내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과정을 다룬 동화다. “민주주의는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을 바꿔나가는 동사라는 걸 아이들이 알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 교사는 2006년부터 사회참여 교육을 펼쳐왔다. 당시 서울당산초에서 근무했다. 반 아이들은 ‘자전기 타기 생활화’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시험에서 정답으로 썼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아이들 안전을 이유로 자전거 통학을 금지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나눠줬다. 그는 아이들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길 만들기에 나섰다. 시민단체 ‘자전거21’의 도움이 컸다. “세상이 각박했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무슨 일이든 도움을 주는 곳이 있었고, 아이들은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좋은 어른들도 많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죠.”
아이들이 주인공인 사회참여 활동에는 기다림이 중요하다. 새 학기마다 만나는 반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예컨대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 먹을 공간이 없어 비 오는 날엔 버스 안에서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반 아이들에게 하면 반응이 나뉜다. ‘쉼터가 생길 수 있게 같이 해봐요’라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도 있고, ‘박물관장에게 편지까지 쓸 일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내는 아이도 있다. “3년 동안은 편지 쓰기를 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때까지 기다렸죠.”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시락을 먹는 쉼터를 마련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아이들이 용기를 내 박물관장, 국회의원 등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제도와 규정, 현실적인 여건 등으로 어렵다는 대답이 몇 년째 이어지다 어렵게 결실을 보았죠.”
2013년 서울수송초에서 시작한 동네 안전지도 만들기는 그의 사회참여 교육의 전환점이 되었다. 실제 지역 문제 해결로 이어진 것이다. 그때 여성가족부에서 지원도 하면서 안전지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두 해를 연이어 했다. 그런데 위험한 곳은 그대로였다. 선배들이 만든 동네 안전지도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안전지도를 왜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하나라도 바꾸자고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아이들 스스로 동네를 바꿀 수 있게 부채질을 했죠.” (웃음)
배 교사는 공교육 교사로서 교과와 접목하기도 중시한다. 1~2학년 안전, 3~4학년 마을지도와 지역 문제 해결, 6학년 커뮤니티 맵핑 기법을 연계한다. 사회참여 활동 뒤 아이들의 교과 이해 능력도 훨씬 높아졌다. 이를 위해 교과 통합수업을 열어간다. 참여활동 중 편지쓰기로 국어, 발표자료 꾸미기로 미술, 컴퓨터를 활용한 자료조사는 실과 수업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모둠별 활동으로 협동과 협력을 경험하고 <서울&> 등 신문 기사와 사진을 활용하면서 아이들이 실제 생활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해요.” 박물관에 도시락 먹는 쉼터 마련은 2014년에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시민의 권리를 실천한 사례로 실렸다.
사회참여 활동에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성과는 아이들의 변화다. 학기 초 아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우리도 할 수 있을까?’이다. 그리고 끝난 뒤의 소감은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 뿌듯하다’이다. “학기 말에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아이들은 많이 변해 있어요. 무엇보다 시야가 넓어지죠.” 박물관 같은 공공 공간에 가면 먼저 의무실 등 몸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학부모들도 처음엔 ‘왜 이런 걸 하지’라고 의아해하다,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바꼈어요.”
배 교사는 아이들이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도우려 애쓴다. “아이들이 보낸 편지에 해당 기관장의 답장이 오지 않거나 진행이 잘 안 될 때, 아이들 스스로 힘을 내게 하는 게 중요해요. 세상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면 도전하지 않게 되죠.” 배 교사는 반 아이들의 다친 마음을 쓰다듬어주기 위해 음식을 해서 나눠먹기도 하고 선생님이 후배들과 이어가겠다고 약속도 한다.
새해 배 교사는 새로운 사회참여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생활 속 화학물질에 대해 아이들과 내용을 살피려 한다. 지난해 서울삼양초 아이들과 함께한 학교 공간 바꾸기 활동도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언젠가는 현장 교사들이 모여 생활 속 사회와 역사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살아 있는 교과서를 꼭 만들어보려 한다. “가장 큰 바람은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자라는 데 유쾌한 길동무가 되어주는 역할을 이어가는 겁니다.” (웃음)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