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바자회 등 직접 모금…기관 협력도
12명 선발 5박7일 민간외교 임무
동주민센터 공무원 등 자비로 인솔
“경험 통해 잠재력·동기 찾아주고파”
작년 12월17일부터 5박7일 동안 네덜란드 등에서 평창겨울올림픽을 홍보한 광진구 중곡4동 소행성 탐험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봉주르, 두유노 평창?” 작년 12월18일 벨기에 브뤼주의 마르크트 광장. 한국의 청소년 12명이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서툰 영어에 몸짓까지 섞어가며 평창겨울올림픽을 소개했다.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와 올림픽 오륜기 배지를 나눠주며 개최국 한국을 알렸다. 처음에는 쭈뼛거렸던 학생들도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질문하자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이들은 광진구 중곡4동의 소행성(소중하고 행복한 성장도전) 탐험대원들이었다. 이채헌(16)양은 “처음에는 ‘평창올림픽을 홍보하라’는 임무를 받고 많이 긴장했는데, 막상 해보니 외국인과 서로 언어는 달라도 뜻이 있으면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소행성 탐험대원들은 5박7일 동안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을 돌며 방문하는 도시마다 평창올림픽을 홍보했다. 이준하(16)군은 “민간 외교활동을 하면서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고, 처음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느낄 때는 평소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학생들 모두 외국여행은 처음이라 일정 내내 사건·사고도 잦았다. 프랑스에 입국한 뒤 비행기에 소중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놓고 내린 걸 알고 울먹거리기도 하고, 파리 에펠탑 엘리베이터에서 키스하는 연인을 보며 문화 충격을 받은 학생도 있었다.
작년 12월2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구텐베르크 광장에서 광진구 중곡4동 소행성 탐험대원들이 주민에게 평창올림픽을 홍보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끝낸 뒤에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일지를 썼다. 첫날에는 피곤하고 지친 마음에 한 줄만 대충 쓰는 학생도 있었지만, 여행할수록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담기 시작했다. 이채헌양은 “밤마다 일지를 쓰는 게 엄청 싫었는데, 나중에 일지를 보니 사진만으로 기억할 수 없는 감정까지 읽을 수 있어 기록의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소행성은 ‘나눔이웃’ 등 중곡4동 주민들이 저소득가정 학생들에게 외국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주는 사업이다. 나눔이웃은 주민이 직접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도록 서울시가 주민 소모임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주민들은 외국 문화를 체험하는 게 흔한 또래 학생들과 달리 가정 형편상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소행성 탐험을 기획했다. 중곡4동 나눔이웃 이정인씨는 “청소년에게 막연한 희망과 꿈을 심어주기보다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경험을 통해 변화 가능성과 숨어 있는 잠재력을 찾아주고 싶었다. 여행은 자신을 변화시킬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업이나 재단 후원 등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 대신 나눔 후원과 바자회 등 이웃을 직접 만나 자원을 마련했다. 중곡종합사회복지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희망샘지역아동센터 등 지역의 공공기관과 민간기관의 협력도 끌어냈다. 탐험대를 인솔하고 일정 내내 보호자를 자처한 조용례 단장(중곡4동주민센터 복지팀장) 등 5명은 여행 경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소희경(16·가명)양은 “그동안 어디서 주는지 잘 모른 채 후원금을 받았고, 감사하다는 인사도 형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며 “이번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를 타면서 정말 설 우리 마음까지 헤아린 기획으로 느껴져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고 말했다. 소행성 실무팀은 탐험대원을 뽑기 위해 중곡4동에 사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신청을 받았다. 신청 계획서, 자격 조건, 거주 확인 등 1차 서류심사와 2차 주민·기관장 면접까지 거쳐 12명을 뽑았다. 최종 선발된 12명은 4주 동안 소행성 사전 프로그램에 참여해 또래 협동과 친밀감 형성 등 교육을 받았다.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 심폐소생술(CPR)과 대처 요령을 배우고 응급구조 자격증도 땄다. 민간외교 사절을 자처하며 외국 탐방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훌쩍 성장했다. 김도형(16)군은 “예전에는 일상생활이나 학교의 모든 것이 귀찮았고, 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곡4동 주민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밝은 미래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저소득가정 청소년과 관련된 주민 사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광진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