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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길, 김정은의 길

기명유신(其命維新) 그 기, 목숨 명, 바 유, 새로울 신

등록 : 2018-03-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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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문장은 ‘주수구방 기명유신’(周雖舊邦 其命維新)이다.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그 천명은 늘 새롭다”는 말이다. 무력이나 혁명의 방법을 쓰지 않고 체제를 혁신한다는 뜻인 ‘유신’(維新)이란 말이 여기서 비롯됐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우리나라 박정희 시대의 10월 유신 등이 이 말을 빌렸다.

출전은 <시경> 문왕편이다. “문왕이 하늘에 계시사 하늘에서 밝게 빛나시니(文王在上 於昭于天)/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천명은 항상 새롭구나(周雖舊邦 其命維新)/ 주나라의 덕 밝게 나타났고, 하늘의 명 때를 맞추니(有周不顯 帝命不時)/ 문왕의 혼령 오르내리며 하느님 곁에 계시네(文王陟降 在帝左右)(하략)

학자들은 이 시가 주나라 지도자 주공이 주나라 창업의 기초를 닦은 아버지 문왕의 덕을 칭송하며, 주나라가 천명을 받아 은나라를 대신하였음을 강조하여 조카 성왕이 덕으로 나라를 잘 다스릴 것을 훈계한 것이라고 본다. “훌륭한 조상을 잊지 말고 항상 덕을 닦기를 바라네/ 길이길이 천명을 받들어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할지니/ 은나라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을 땐 천명에 부합했나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삼으라 천명은 지키기 쉽지 않으니”

주나라가 은나라 때부터 있어온 오래된 나라지만 문왕이 나타나 나라를 새롭게 혁신시켜 끝내는 은나라를 대신하라는 천명을 받았으며, 후손들은 이런 뜻을 잘 지켜 나라를 늘 새롭게 보존하라는 가르침이다.

훗날 성리학에서도 ‘기명유신’은 군자의 으뜸 덕목으로 예찬된다. 주자는 <대학장구>에서 “군자가 이러한 가르침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君子無所不用其極)”며 천명을 새롭게 하는 일을 사군자(士君子)의 으뜸 덕목으로 삼고 있다.

유신의 뜻을 잘 살린 정치적 사건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다. 박정희는 종신 집권의 길을 튼 체제 개혁을 10월 유신이라 칭하며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의 참뜻은 어디까지나 지도자가 천명을 두려워하며 나라와 인민을 위해 늘 새로워지길 간구한 것이었다.

북쪽의 개혁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바야흐로 유신의 기운이 한반도 북녘을 덮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바라건대 젊은 김정은은 주공이 문왕을 기린 참뜻을 본받아 “나라의 구습을 일신하고 백성의 마음을 새롭게 진작하는” 유신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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