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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맹세’라는 말이다. 황천(黃泉)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저승을 뜻하므로 황천지서는 ‘죽음을 걸고 맹세한다’는 말이 된다. 출전은 <춘추좌전> 노은공조. 부모·자식 간의, 형제간의 의리에 대해 여러 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고사를 담고 있다.
정나라 왕비 무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오생(寤生)은 난산의 고통을 안겼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작은아들 단(段)을 편애했다. 훗날 오생이 임금(장공)이 되자, 무강은 장공에게 나라에서 가장 큰 읍성을 동생에게 떼주라고 했다. 장공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동생 단은 그 읍성을 바탕으로 은밀히 세력을 키우는 한편, 주변 고을에 형과 똑같이 자기에게도 공물을 바치도록 했다.
장공이 이를 묵인해주자, 다음에는 아예 그 고을들을 자기 영지로 삼고는 다시 그 주변의 고을들에 또 공물을 바치도록 했다. 야금야금 형의 영토를 잠식하려는 의도가 분명했지만, 장공은 “영토가 넓어진들 군신과 형제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용인한다.
간이 커진 단이 어머니 무강을 끌어들여 쿠데타를 꾸미기에 이르자, 장공은 그제야 “때가 되었다”며 선제공격을 해 동생 단을 국외로 추방하고, 어머니를 외진 성에 연금시켜버렸다. 그리고 신하와 백성 앞에서 “내가 황천에 가기 전에는 다시 어머니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효자인 장공은 곧 후회했지만, 맹세를 번복하는 것은 군주로서 반도(반란을 일으킨 무리)를 처벌하는 형평에 맞지 않았다. 그때 신하 영고숙이 꾀를 낸다. “임금이 진실로 효도를 다 하겠다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황천은 문자 그대로 누런 우물(黃泉)이니, 물이 나올 때까지 누런 흙을 파서 굴을 만든 다음, 그 안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뵙는다면 누가 감히 딴지를 걸겠습니까?” 장공은 곧 땅을 파 우물을 만든 다음 그 안에서 어머니와 재회하니, 두 모자가 마침내 화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좌전은 이 고사에 대해 ‘영석이류’(永錫爾類)라는 평가를 덧붙였다. 영석이류는 <시경>에 나오는 말로 ‘한 사람(영고숙)의 효심이 다른 사람(장공)에게 미치듯이, 같은 부류의 사람끼리 좋은 영향을 널리 미친다’는 의미이다. 훗날 유가들 사이에서는 색다른 해석도 나왔다. 장공이 일찍이 어머니와 동생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막지 않고 있다가, 동생이 도발하기를 기다려 친 것은 의(義)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