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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망가진 시절, 우리는 약자의 방어막 구실 했다”

차성수·유종필·이해식·김영배·김우영 구청장 등 불출마 구청장 5인 좌담회

등록 : 2018-04-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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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시절과 재임기간 겹쳐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등

공공성 복원의 기틀 만들려 애써

국회의원 도전 등으로 진로 모색

“중앙과 지방정부 8대2 재정비율로는

지방 실정에 맞는 사업하기 어려워

지방분권은 민주주의뿐 아니라

혁신과 성장을 끌고 가는 원동력”


지난 3일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 좌담회에서 구청장 5인이 구정 경험과 앞으로의 거취, 지방자치와 분권 과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차성수 금천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3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구청장 졸업’을 앞둔 재선, 3선의 구청장 5인(차성수 금천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 이해식 강동구청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의 좌담회가 열렸다.

8~10년의 구정 경험과 앞으로 거취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나눴다. 좌담회는 <서울&> 김도형 취재팀장의 사회로 2시간 반쯤 열렸다. 이들은 지난 2월 말(좌담회 섭외 당시) 이전에 제7회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구청장들이다. 섭외가 끝난 뒤 불출마를 선언한 박홍섭 마포구청장 등은 이번 좌담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김도형(사회) 재임 중 이룬 대표적인 성과 한 가지를 꼽아보자.

차성수 ‘혁신교육 사업’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공교육 정상화 사업으로, 금천구가 2013년 시범으로 시작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학교와 마을이 함께 아이들을 키워간다. 2015년 서울의 11개구, 2017년 22개구로 확대되었다. 최근엔 혁신교육 지방정부협의회까지 만들었다. 지방정부가 공교육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또 하나는 ‘수요자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사업’이다. 2013년에 시작한 ‘보린주택사업’으로 열악한 환경에 사는 저소득 홀몸 어르신의 주거환경을 마치 ‘지옥에서 천상으로’ 개선한 것 같은 보람이 있었다. 신혼부부 임대주택과 청년 창업자를 위한 지(G)밸리하우스 등 다양한 계층의 주거환경 개선도 힘껏 했다.

차성수

잘한 점

“공교육 정상화하는 혁신사업과 맞춤형 보린주택사업은 내 성과”

아쉬운 점

“관내 자살률 더 낮추지 못해”

이해식 강동구의 ‘도시농업과 길고양이 급식사업’이다. 도시농업은 2009년부터 준비해 이듬해에 조례를 만들었다. 처음 둔촌텃밭 226계좌를 시작으로 현재는 총 42개소에 7612계좌로 크게 늘었다. 행정에서 도시농업을 처음으로 끌어들여 전국으로 퍼뜨렸던 점이 가장 보람 있었다.

도시농업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정책이기도 하고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정서 순화로 건강도시를 만드는 사업이기도 하며, 공동체를 키운다. 도시민들의 각박한 삶을 보완해주기도 한다.

길고양이 급식사업은 사람과 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줘 생존 조건을 만들고, 개체수를 적절하게 조절해 울음소리나 쓰레기 등으로 생기는 민원을 줄였다. 찾아가는 동물학교, 동물 문제행동 교정, 유기동물 입양카페 등으로 이어져 동물복지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유종필 ‘도서관 사업과 자원봉사 활성화 사업’이다. 관악구는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사업을 추진했다. 민선 5기 취임 초 5개였던 도서관은 43개로 늘었으며, 도서관 회원수는 133%, 도서 대출은 90% 늘었다. 관악구 모든 도서관의 책을 통합전산망으로 연결해, 집 가까운 도서관과 지하철역으로 가져다주는 지식도시락 배달서비스도 뜻깊다. 지난해 관악산 높이(629m)의 15배인 46만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독서동아리 등록제를 도입해 현재 469개 팀으로, 서울시 전체(독서동아리 중)에서 최다인 33%에 이른다.

민선 6기 취임 때 ‘365자원봉사도시’를 선포했다. 봉사자나 봉사받는 사람 모두 행복하게 자원봉사 활성화에 나섰다. 자원봉사자가 관악구민의 20%인 10만 명을 넘었고 봉사단체는 550개, 환산가치는 지난해 102억에 이른다. 자원봉사는 남의 발을 씻겨줌으로써 내 손이 깨끗해지는 원리로 공동체가 따뜻해지는 효과도 있다.

김우영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펼친 ‘주민참여예산, 마을 속 학교, 도시재생사업’이다. 은평구는 주민참여예산제 안정화와 협력하는 마을 모델을 만들었다. 예산 편성,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에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은평형’ 주민참여예산제를 선도적으로 실행하고 제도로 안정시켰다. 스위스의 주민참여예산 모델을 청소년 분야에 적용했다. 청소년이 직접 자신에게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고 투표하는 직접민주주의 실험을 나름대로 성공시킨 것이 제일 큰 보람이다.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공감대를 이루고 아이들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마을 속 학교를 키웠다. 마을의 엄마 강사들, 전문가들이 학교와 연결되어 아이들의 다양한 감성을 키우고 마을과 협력하는 학교 모델을 만들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한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주민참여의 상징으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마을도서관 건립을 바라는 주민 서명으로 시작해 2012년 주민참여예산사업으로 추진했다. 기존 마을과 주택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마을 자체를 하나의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관리한다.

김영배 ‘동행’(同幸)과 ‘생활임금’이다. 함께 행복한 ‘동행’은 공동체의 상생 이념으로, 성북구의 아파트 단지에서 절전운동으로 시작했다. 아파트 경비원 해고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전기요금을 아낀 돈으로 경비원들의 최저임금과 고용을 보장해주자는 선언문과 동행계약서로 발전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최저임금과 고용안정 문제가 사회적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아주 좋은 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서로 ‘윈윈’하면서 아파트 안전성도 높이고 고용도 보장하며, 전체적으로 행복도를 높인 게 가장 큰 자랑이다. 조례도 만들고 공식 브랜드화해 성북구 전체의 정체성으로 자리잡도록 노력 중이다.

성북구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생활임금제는 광역지자체를 포함해 77곳이 도입했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에 따라 최저임금을 올리고, 노동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인 정책 과제로 제시하는 데 일조했다.

사회 모두 워낙 활발하게 활동을 해 성과를 하나로 압축하기는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웃음) 3선 임기를 마친 이해식 구청장을 빼고 다른 구청장들은 이번 선거에 나올 수 있는데 왜 그만뒀는지….

김영배 지난 8년은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의 초입 단계로 진입하게 된 중요한 시기였다. 무상급식 등 논쟁도 있었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재정과 조직, 정책 등이 갖춰졌다. 하지만 지금의 헌법 시스템, 정치체제, 사회문화를 보면, 덩치는 큰데 옷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꼴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 옷을 디자인해 만들고, 그 옷을 다량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이 입게 준비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자치분권과 분권국가의 중요성에 공감할 수 있게 교육, 홍보 등에 나의 모든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종필

잘한 점

“민선 5기 5개 도서관이 43개로 늘어 6기 때 구민 20% 자원봉사자”

아쉬운 점

“구민 소득 높이지 못한 것”

유종필 개인적으로 성공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후진에게 물려주고 새 길을 개척해보려 한다. 지방정부를 운영하면서 쌓은 여러 가지 경험과 현장성의 역동성을 국회에 들어가 중앙정치에 반영해보고 싶다.

차성수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은 최악의 시기였다. 공공부문이 망가진 가운데 지방정부는 사회적 약자의 방어막 구실을 했다.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등으로 공공성 복원의 기틀을 열심히 만들었다. 공공성을 복원하려면 분권, 자치와 혁신 세 바퀴가 돌아가야 한다. 중앙정부, 중앙 언론 등의 큰 장애를 넘어야 하고 전국의 지자체 전체로 퍼져나가게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출마 결정의 직접적인 이유는 3선 연임제한제(구청장을 연달아 재임하는 것은 두 번에 한함)에 있다. 구청장을 20년 해서 내 동네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면 계속 도전하겠지만, 이번에 나가더라도 4년 뒤 어차피 하차해야 한다. 3선 제한제도가 지방정부의 발전이나 지방의 공공성 강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항의 뜻도 있다. (웃음)

김우영 민선 5기엔 최연소, 6기엔 두 번째로 젊은 구청장으로 알려졌지만, 정치 경험은 1996년 국회의원 비서로 시작해 20년이 넘는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또 지방정부에서 제도와 법률의 한계를 자주 경험했다. 협력하는 마을 기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기회가 닿으면 국회로 나아가고 싶다.

사회 3선 임기를 마친 이해식 구청장도 한 말씀 해달라.

이해식 2008년 보궐선거로 구청장이 됐을 때 제일 중요한 공약이 중도사퇴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전임 구청장 두 명이 국회의원 출마로 중간에 그만두면서 구의 예산 낭비가 많았다. 구청장으로서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재선, 3선 때의 한결같은 공약이었다. 사실 2014년 선거 때 다른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출마했고 임기를 다 채웠다. 바람직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뿌듯하다.

김영배 그전엔 정치하려면 여의도로 가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이젠 생활정치를 바꾸는 게 잘하는 정치라고 인식되고 있다. 생활정치가 정치의 영역이 되었다. 시장, 도지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민선 5, 6기 지방정부가 이런 변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사회 동네정치의 변화가 있었기에 지방분권 개헌까지 끌어낸 것 같다. 한마디로 요약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각자에게 구청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 결산해보면?

차성수 개인적으로는 인생학교였다. 금천구청장을 하면서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을 다 만났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부터 큰 부자까지, 이들 모두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가장 큰 보람이었다.

주민, 공무원과 함께 헌신적으로 일하는 게 구청장이다. 주민 생활과 관계된 모든 것에 관여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이해식 엄마 같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동구의 주민들이 구청 관련 부서에 민원인으로 왔다가 해결이 안 되면 구청장실에 오기도 한다. 집단으로 구청 앞에서 ‘데모’(시위)도 한다. 오늘도 두 팀이 하고 있는데, 그들의 구호를 들어보면 구청장을 엄마 같은 마음으로 주민을 돌보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음을 느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보람이 큰 직업이다.

유종필 구청장이란 손으로 만져지는 정치를 하는 자리다. 정치하면 추상적이다. 새 정치라는 말도 만져지지 않는다. 그런데 구청장으로서 하는 행정이자 정치는 주민이 바로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김우영 저는 원래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는 프로젝트형인데, 은평구청장을 해보니 완전히 농부 같았다. 사시사철 어느 한 계절도 쉴 수 없다. 여름이면 물난리, 겨울이면 동파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봄엔 씨앗 뿌려, 가을엔 추수해야 하듯 모든 것이 다 있다. 성실하고 꾸준히 동네에서 더 많은 결실을 내야 한다. 진짜 열심히 했다.

김영배 구청장 자리는 (다용도로 쓰이던) 막사발과 같다. 이것저것 담고, 때에 따라 못생기기도 하고, 때론 고풍스럽고 귀한 것이기도 하다. “마음이 모여 마을이 된다”는 성북구의 구호처럼, 마음을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하고, 구청장은 이런 노력을 하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성숙해지는 시기였다. 구청장을 하면서 보람이 뭔지, 살면서 꼭 해봐야 할 게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사회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큰 사업이나 못다 한 과제, 후임 청장이 이뤘으면 하는 사업이 있다면?

차성수 출근해 책상 위에 오른 여러 개 보고서 가운데 자살 보고서를 볼 때 가장 마음이 무겁다. 처음 구청장을 할 때 금천구가 서울시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17위로 내리긴 했지만, 더 낮아지지 않았다. 3년간 65살 이상 노인 자살률을 기껏 낮췄는데, 2015년부터는 40~50대 남자 자살이 크게 늘었다. 난감했고 마음이 매우 아팠다. 높은 자살률과 저출산 문제를 푸는 게 이 시대 리더의 최고 과제라 생각한다.

이해식

잘한 점

“행정에 도시농업 처음 도입하고 사람·길고양이 공생 급식소 뿌듯”

아쉬운 점

“주민 편의시설 늘리지 못해”

이해식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뒤 2014년까지 긴축재정이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복지비 분담 매칭률이 높아져 자치구의 가용자원이 거의 없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구청장을 한 것이다. 재정이 부족해 필수적인 주민편의 시설을 많이 마련하지 못한 게 아쉽다. 천호동 등 원도심에도 공영주차장, 공원, 도서관 등을 만들어 지역 내 균형발전을 이루고 싶었다. 다행히 최근 지방세가 늘면서 구 재정에 여력이 생긴 것 같다. 다음 강동구청장이 했으면 좋겠다.(웃음)

유종필 도서관, 평생학습, 인문학 교육 등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많이 했다. 관악구의 분위기를 지성적, 합리적으로 만들었다. 아쉬운 것은 주민 소득을 올려주지 못한 점이다. 서울대와 협력해 만들려 했던 ‘관악 벤처밸리’ 사업은 결실을 못 봤다. 벤처기업들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게 아쉽다.

김우영 2015년부터 국립한국문학관을 은평구에 유치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은평구로 결정했다 번복했다. 현재는 용산공원으로 잠정적으로 정했다.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이 한 말 ‘불가능의 예술’이란 말처럼, 문학은 현실이 아닌 허구와 상상의 논리다.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이호철, 최인훈 등)의 고향인 은평구가 통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색역을 통일문화 중심역으로 재구성하는 사업을 개발 계획만 세워놓고 물러나는 게 아쉽다. 문학관 유치와 수색역 공공개발 과제를 남겼는데, 불가능이 가능한 시절이 오면 좋겠다.

김영배 교육자치가 지방자치로 제대로 연계되지 못했고, 도시계획 권한이 시민 위주로 가지 못한 점이 제일 아쉽다. 교육에 투자를 많이 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도시계획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사업으로 여전히 눈물 흘리는 주민들이 있다. 주민 갈등이 남아 있는 게 고통스럽다. 도시계획을 시민 위주로 짜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센터를 유치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성북구에도 부지는 있었는데 도시계획 권한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사회 구정 일선에서 느꼈던 지방자치 한계 사례를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해식 지구대 파출소로 쓰던 건물이 하나 있었다. 행정안전부에서 파출소를 통폐합해 강동구가 인수했다. 리모델링해서 그 주변에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경로당 이름을 달 수 없었다. 건축법상 노유자시설로 지정하기에 문짝 폭이 2㎝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중앙부처의 지침을 보며 일한다. 창의적인 행정,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행정, 그리고 무게중심을 주민의 삶에 두는 행정이 불가능하다. 개발독재 시대 때는 중앙집권형 행정 시스템이 어느 정도 효율성 또는 속도와 같은 긍정적인 기능을 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정말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김영배 성북구는 일터와 주거 혼합형 청년주택 ‘도전숙’ 사업을 했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공공주택의 입주자는 도시계획 철거대상자, 복지대상자와 같이 특정되어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어느 정도 소득이 있으면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북구하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 서울중소벤처기업청 3자가 업무협약(MOU)을 맺고 우리 구가 청년창업 하는 사람을 키우고 있으니 주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해마다 성북구에 공급될 공공임대주택 물량의 30% 범위에서 입주자를 구청장이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중앙정부에서는 전국을 무 자르듯 획일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실제 복잡한 지역의 생활을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지역의 수요를 현실화해낼 수 있는 지방분권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영배

잘한 점

“함께 잘 살자는 동행 사업과 전국 첫 생활임금제 자랑스러워”

아쉬운 점

“도시계획 권한 주민 위주로 안돼”

유종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세수 비율은 8 대 2다. 서울은 적은 비율의 지방세 대부분이 서울시로 간다. 지난해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의 조정 전 세수 비율은 86 대 14였다. 관악과 인근 금천·구로 주민들의 관심사가 다르다. 관악 안에서도 서울대와 난곡, 신림사거리는 처한 여건이 다르다.

재원이 서울시에 집중돼 있다보니 자치구가 사업을 기획하면 서울시 담당 공무원부터 만나 설득해야 한다. 구가 하면 바로 할 수 있는데 몇 년씩 걸리기도 하고, 몇 년 끌다가 안 되기도 했다. 구청이 주민들과 가장 밀착해서 호흡하고 있고 구의 문제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구의 재원으로 더 많이 이양해줘야 한다.

차성수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의 칸막이를 넘어서는 것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아동·청소년 돌봄과 교육 관련해 중앙정부나 서울시, 시교육청으로부터 내려오는 사업이 30~40개가 된다. 500만원, 5천만원, 1억원 등 규모도 다양하다. 여러 사업이 각각의 예산과 각각의 부처에서 집행되면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권은 민주주의의 원리일 뿐만 아니라 자원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돌봄과 교육 사업을 하면서 아주 절박하게 느꼈다.

김우영 자치분권의 기본은 주민자치 강화이다. 지방이 잘할 수 있는 건 지방이, 나머진 중앙이 하며 협력적 관계로 가야 한다. 집단지성의 시대에 ‘촛불(시위)’은 분권에 의한 의사결정을 했다. 1700만 명이 집회에 모여도 사고 한 번 없었던 위대한 시민혁명이었다. 주민들의 상호작용으로 의사결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고 안전하면서도 가장 과학적인 원리에 가깝다고 본다.

사회 대통령 발의로 지방분권 개헌안이 국회로 넘어갔지만, 야당의 반대와 국민의 관심 정도가 낮아 미지수다. 마지막으로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이 되기 위한 1순위 과제를 꼽아달라.

김영배 지방분권 개헌에 정파적으로 접근하면 국민에게 사망 선고를 받을 것이다. 대화를 통한 타협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놓치지 않아야 한다.

김우영 자유한국당도 정당 정치에서는 중요한 파트너다. 어떻게 보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 뒤 바로 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이 개헌 문제다. 지방분권 개헌을 하면 민주당만 지방자치하는 게 아니다. 자유한국당도 상당수의 멤버들이 지방을 이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100을 가지고 갔다면, 분권하면 그 상당 부분이 이양된다고 생각하면서 진행했으면 좋겠다.

김우영

잘한 점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펼친 주민참여예산, 마을 속 학교 등”

아쉬운 점

“문학관 유치 실패한 것”

유종필 정파 다툼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지방의 재정자치가 매우 중요하다. 국세기본법, 지방세기본법을 개정해 재정자치를 점진적으로 이뤄야 한다.

이해식 개헌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야당의 개헌안이 나왔으니 구체적 협의로 단일안을 만들어 개헌해야 한다. 자치분권 개헌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교다. 지방분권은 주민에게 권한을 많이 주는 게 핵심이다. 지방자치 반대론자들은 “지자체장과 의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으니 권한 많이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100년 전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성들에게 무슨 참정권이 필요하냐고 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다. 결국은 권한을 줘봐야 한다. 권한을 주지 않아 정체되고 왜곡된 사례들이 더 많이 생긴다.

제도는 결국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다. 매연기관 자동차가 처음에는 마차를 대신하면서 굉장히 효율적으로 달렸지만 이젠 탄소를 많이 배출해 대신 전기차가 나온 것과 같다. 지방자치는 전기차와 같은 제도다.

차성수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지났다. 이제 변화할 때가 됐다. 변화의 목소리는 지난 촛불 시위에서 “이게 나라냐”고 하는 국민의 함성으로 터져나왔다. 사회와 문화 모든 측면이 빠른 속도로 변화했는데 국가와 정치체제가 이것을 뒷받침은 못 하고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었다. 지방분권은 민주주의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혁신과 성장을 끌고 갈 수 있는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해야 한다. 분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을 넘어설 수 있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경제 영역에서 지방분권의 효과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이 필요한 단계다. 지방분권은 역사적 흐름이다. 막지 못한다.

사회 긴 시간 솔직한 말씀 감사하다.

정리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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