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성희롱 직원 성과급·주요 보직 안 주고, 위탁기관은 협약 해지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없는 성평등 도시 대책’ 후속 제도 마련

등록 : 2018-07-1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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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신고·징계 등 조직 전반 개선

온라인에서 제3자 익명 제보 접수

출연·위탁기관에 엄격한 기준 적용

용역업체 심사에도 전국 최초 반영

지난 3월4일 오후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5년 서울시에 갓 입사한 ㄱ씨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상급 직원인 ㄴ씨가 “옆으로 와서 앉으라”며 ㄱ씨의 옷을 잡아당겼고, 등·손·허벅지 등을 만졌다. ㄱ씨의 신고를 접수한 서울시는 사건을 조사한 뒤 ㄴ씨에게 가해자 의무교육과 무관용 인사 조처를 단행했다. 인사위원회는 ㄴ씨의 강등 조치를 결정했다. 피해자 ㄱ씨에게는 유급휴가를 주고 앞으로 ㄴ씨와 같은 부서로 발령 나지 않도록 조처했다.

만약 같은 사건이 지금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ㄴ씨는 이에 더해 성과급 제외, 주요 복지 전보 제한 등 추가 인사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ㄱ씨가 소송을 한다면 법률 상담은 물론 민·형사 소송 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최근 서울시가 성희롱·성폭력 대응책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발표한 ‘성희롱·성폭력 없는 성평등 도시 서울 대책’과 관련해 시 조직 전반을 아우르는 제도 재정비를 최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먼저 4월부터 신고·조사 단계부터 피해자와 행위자를 분리 조치하고, 가해자로 확정되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고 주요 보직을 맡을 수 없도록 내부지침을 개정했다. 관리 책임도 부서장급(4급)에서 실·본부·국장(3급 이상)까지 확대했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퇴직할 때까지 동일 업무, 동일 공간에서 근무하는 일이 없도록 인사전산시스템을 개선했다.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도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도록 바꾼 내부 온라인 신고 게시판을 지난 5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에게는 서울시 직원 대상 심리치료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도록 지원하고, 10명의 전담 변호사 인력풀을 가동해 무료 법률 상담을 해준다. 또 대면 상담을 기피하는 피해자를 위해 온라인으로 상담원과 소통하고 신고까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했다. 하반기부터는 변호사 선임 등 소송비용도 지원할 계획이다. 개정된 지침에 따라 ‘서울시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 위원장도 기존 여성가족정책실장에서 행정1부시장과 외부전문가 공동위원장 체제로 강화됐다.

서울시는 투자출연기관, 민간위탁기관, 용역계약업체에도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3년 서울시의 ㄷ위탁업체에서 근무하던 ㄹ씨는 회사 워크숍에 참가했다 잠이 들었다. 그때 부팀장 ㅁ씨가 ㄹ씨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 ㄹ씨는 이 사실을 동료에게만 말했으나 전해 들은 다른 관리자들이 ㅁ씨를 옹호하고 나섰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서울시는 ㄷ업체에게 적절한 조치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게 한 뒤 정기적으로 감독했다. 그러나 최근 개정된 민간위탁 표준협약서에 따르면 서울시는 ㄷ업체와 위탁협약 자체를 해지할 수 있다.

서울시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협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민간위탁 표준협약서’를 개정해 지난 7월1일부터 적용했다. 서울시와 계약하는 모든 업체·기관은 성희롱·성폭력 방지 서약서도 반드시 제출하고 이행해야 한다. 일반용역 계약업체를 심사할 때 직장 내 성폭력 등으로 처벌(과태료 이상의 처분 또는 벌금 이상)받은 적 있는 업체에는 감점(최대 5점)을 준다. 용역업체 심사 기준에 성희롱·성폭력 관련 내용을 반영한 것은 서울시가 전국 최초다.

2015년 서울시 ㅂ출연기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근무하던 ㅅ씨는 휴대전화기로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을 찍어 몸매 비교를 했다. 다른 아르바이트 직원의 멍이 든 다리를 가리키며 “성폭행당했냐” 등의 말을 하고, 볼까지 꼬집었다. 피해를 본 직원 4명은 이 사실을 카페 담당자와 팀장에게 보고했지만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 이 사건을 접수한 서울시는 ㅅ씨에게는 사과와 의무교육 이수를 지시했고, ㅂ출연기관에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관리자 대처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내년부터 투자·출연기관의 성희롱·성폭력 방지 노력을 반영할 새 경영평가 지표를 적용하면 ㅂ출연기관은 낮은 점수나 감점을 받게 돼 기관장과 모든 직원의 성과급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윤희천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은 “시민 관점에서 보면 서울시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기관과 업체가 서울시인만큼 관련 기관의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조치가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의 범위를 확대·강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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