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청년 망치질에 이웃 할머니 집 ‘깜짝 변신’

성북구, 전국 첫 ‘고령친화 주거관리서비스 청년사업단’ 운영

등록 : 2019-07-1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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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청년 15명 선발, 300시간 교육

구 기간제 노동자로 연말까지 활동

190가구에 수리·정리 수납·청소 방역

취·창업 역량 강화 지원 이어지길 기대

성북구의 ‘고령친화 주거관리서비스 청년사업단’의 팀원들이 6월28일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이 집에서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부서진 나무 바닥 교체, 안전바 설치 등의 시공을 했다. 정용일 기자yongil@hani.co.kr

6월28일, 30도를 웃도는 후텁지근한 날씨. 성북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은아무개(79) 할머니 집을 청년 8명이 찾았다. 이들은 성북구의 ‘고령친화 맞춤형 주거관리서비스 청년사업단’(15명) B팀의 팀원들이다. 할머니가 안전하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집을 손봐주는(설치, 수리, 교체 등) 서비스를 하러 왔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할머니는 손주처럼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하이언 팀장은 “여러 차례 찾아도 귀찮아하지 않고 반겨주시고 좋아해주신다”고 한다. 이전 방문에선 사업단의 집수리 방식에 관해 설명하고 할머니 의향을 물었다. 집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불편이 있는지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예산(최대 100만원)에 맞춰 시공 계획을 세우고 자재를 발주했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 3일 전 방문해 짐 정리를 하고 폐기물을 처리했다. 하 팀장은 “어르신들이 처음엔 불편한 게 없다며 낡은 시설 수리만 요구하다가 진행을 하다보면 불편 사항들을 줄줄 쏟아낸다”고 전한다.

성북구는 지난달부터 고령친화 맞춤형 주거관리 서비스를 하는 청년사업단을 운영한다. 전국에서 처음이다. 구는 청년 취·창업을 위한 지방정부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문제 해결 영역과 접목을 시도했다. 성북구는 고령 인구가 많고, 낡은 집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많은 노인이 살던 집에서 여생을 보내길 바라는데, 안전사고 대부분이 집에서 일어난다. 이런 문제점에 주목한 성북구는 청년들에게 집수리와 청소 방역, 정리 수납 등을 교육해 사업단을 만들어, 이웃 노인에게 안전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예산은 서울시와 구가 분담해 6억5천만원을 마련했다. 시범 사업 서비스 비용은 서울시 참여예산 공모사업(청소·정리 수납)과 공동 모금회 성금(간단 집수리)을 활용했다. 서비스 대상 가구는 복지부서와 동주민센터(찾동), 동복지협의체 등 민간 복지네트워크의 추천으로 뽑았다. 사업단은 대상 가구들에 상담과 진단, 시공 서비스를 하면서 틈틈이 추가 교육도 받는다.

지난 3월 공모로 선발된 20~30대 사업 참여자들의 이력은 다양하다. 집수리 경험을 살려 창업해보고 싶은 이, 기술을 배워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싶은 이, 다시 일하고 싶은데 경력이 단절된 이 등이다. 공통된 것은 사회에 도움 되고 싶은 마음이다. 이들은 연세대 산학협력단과 연계한 이론교육과 실습 300시간에 참여해 지난달 11일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사업단의 자문위원인 양진영 일상공간 대표는 “청년들은 어르신의 생활을 바꿔주는 경험을 하며 보람을 느끼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을지는 불안해한다”며 “취·창업을 위해 진단 능력 등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지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업단이 독자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첫 사례가 은 할머니 집이다. 팀원들은 “실습 때와 달리 우리가 직접 해볼 수 있어 좋다”면서도 “열심히 했는데 할머니 마음에 들지 걱정이다”며 불안해했다. 10평 남짓의 할머니 집에는 베란다, 거실 겸 방, 부엌 겸 복도, 작은 방, 화장실, 현관이 있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베란다와 거실에서 작업을 많이 했다. 베란다와 방 사이 문을 다시 달고, 베란다에 쌓여 있는 짐들을 철제 수납장에 정리했다. 썩어가는 베란다의 나무 바닥을 덜어내고 청소와 방역을 했다. 먼지가 수북한 고장난 버티컬을 떼내고 창문에 단열 시트지를 붙였다.

주요 이동 통로에 안전바도 설치했다. 의족을 쓰는 할머니가 앉았다 일어날 때 잡기 좋게 하기 위해서다. 현관 앞에는 작은 의자를 두고, 신발장을 철제 수납장으로 바꿔서 할머니가 앉아서 신발을 꺼내 안전하게 신을 수 있도록 했다. 화장실에는 미끄럼방지매트와 거치식 안전바를 설치했다.

느지막한 오후 집에 돌아온 할머니 손엔 청년들에게 줄 우유와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세상에 이걸 어떻게 다 해놓았어!” “아이구, 참 좋네! 애썼어, 새집이 됐네!” 감탄을 이어갔다. 좋아하는 할머니 모습에 팀원들 얼굴도 환해졌다.

청년사업단 참여자는 구의 기간제 노동자로 올해 연말까지 190가구를 목표로 집수리·정리 수납·청소 방역 서비스를 한다. 급여는 생활임금에 맞춰 월 211만원 정도를 받는다. 참가자들의 교육을 담당한 이연숙 연세대 교수는 “초고령사회, 청년 실업, 세대 갈등, (고령자 의료비 증가에 따른) 세금 부담 등의 문제를 동시에 풀어갈 수 있는 사업 모델이다”고 평가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성북구 모델이 전국으로 퍼지길 기대한다”며 “청년 일자리와 어르신 주거 복지 문제는 지방정부 힘만으로 벅차기에 범정부 차원의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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