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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림 대작 논란에 휩싸인 가수 조영남이 30여년 전 이혼한 ‘조강지처’ 윤여정과 재결합을 기대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하여 연예계의 가십이 된 일이 있다. 이때 쓰인 조강지처(糟糠之妻)라는 말은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을 함께 먹으며 고생한 아내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첫번째 결혼한 부인, 또는 본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조강지처라는 고사는 범엽이 쓴 <후한서 열전> ‘송홍전’에 나온다. 송홍(宋弘)은 후한을 세운 광무제 때의 현신으로 인격이 높고 풍채 또한 늠름했다. 그는 온후한 성품이었지만 바른 말을 잘하기로도 유명해 황제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광무제의 누이 호양 공주는 과부였다. 공주는 오빠가 황제가 된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지만, 남편이 없는지라 밤이면 쓸쓸하기만 했다. 광무제는 황제의 힘으로 누이가 원하는 남자를 짝으로 맺어 주고 싶었다. 어느 날 광무제는 공주에게 신하들을 품평하게 했다. 공주가 마음에 둔 남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사대부 송홍이 인품과 풍채, 모든 면에서….”
광무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송홍이라면 절대 안 넘어올 텐데….’ 그렇다고 공주의 기대를 박절하게 무시할 수도 없었다. 광무제는 어느 날 병풍 뒤에 호양 공주를 숨겨 놓고 송홍을 불러 술을 건네며 넌즈시 물었다.
“옛말에 사람이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인정이 모두 그러하니 이런 말이 생겨난 게 아닐까요?”
광무제의 진의를 알 리 없는 송홍이 평소대로 소신껏 대답했다. “소신이 들은 말은 다릅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친구는 잊어서 안 되고(貧賤之交 不可忘), 가난한 시절을 같이한 아내는 내쫓아서는 안 된다(糟糠之妻 不下堂)’는 말이 그것입니다.”
병풍 뒤의 호양 공주도 송홍의 말을 듣고는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30여년 전 이혼한 부부가 재결합하는 일이 드물기는 하겠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강지처 운운하며 박대한 옛 부인에게 기대려 드는 늙은 남자의 심보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못돼먹은 ‘남근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 편력을 자랑하다 궁박한 처지가 되자 아내 밑에서 끽소리 못 하고 찬밥을 얻어먹는 신세야말로 아무리 딱한들 꼴불견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