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의료 실습생에게 문 연 게스트하우스…‘착한 마케팅’이 빛났다

지역 사회를 바라보는 ‘선량한’ 태도로 코로나19사태 이겨낸 청년 사업자들

등록 : 2020-05-07 14:37 수정 : 2020-05-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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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푸통게스트하우스’

청년들 10여명 자본금 모아 건물 매입

지방 실습생에 80% 할인가로 방 제공

마포구 ‘요가피플’ ‘유솜요가’

서울 요가원들 정부 권고 전 자체 휴업

연습 장소 없는 요가 강사에 무료 제공

“청년 아이디어 모이면 죽은 상권 살려

선량한 태도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지난 2~4월은 자영업자들에게 사실상 ‘고통’의 시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했고, 어떤 업장은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빈 공간을 기부하기도 하고, 지역 병원과 연계해 의료인 지원에 나서는 등 ‘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역 사회를 바라보는 ‘선량한’ 태도가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라고 말한다.

“건물주 횡포와 코로나19, 이겨냈죠”

지난 2월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뿡갈로’가 개업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1층 가죽공방, 2층 식당, 3층 갤러리 겸 외국인 전용 숙박업소로 구성된 이곳은 그동안 외국인 여행객에게 한국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제2의 집으로, 동네 주민에게는 가죽 공예 등 원데이클래스를 즐길 수 있는 `사랑방’으로 이용되며 호평받았다.

이곳을 운영하던 김아람(35)씨는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2015년 ‘경희궁길 위크’를 기획하는 등 골목상권을 살리려고 공을 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선 발품을 팔아 동네에서 10년 넘게 터줏대감처럼 가게를 운영해온 사장님들을 설득해 경희궁길 위크를 기획했다. 이 기간에 이곳을 찾는 손님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사비를 털어 홍보 전단지도 제작했다. 김씨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경희궁길 위크가 당시 언론에 소개되며 외부인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소규모 상점, 식당이 점차 늘어나며 신문로 상권이 몰라보게 활기를 띠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건물주가 바뀌면서 전환점을 맞게 됐다. 새로 바뀐 건물주 부부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해 `건물을 가정집으로 사용하겠다’며 갑자기 나가라고 했다. 알고 보니 기존 월세의 약 두 배를 높여 다른 세입자를 받으려 했더라”고 씁쓸해했다.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푸통게스트하우스’. 청년 10여 명이 돈을 모아 매입한 건물이다. 과거 버스 안내양이 사용했던 오래된 폐여관을 개조했다.

“청년들이 열심히 버텨 상권을 만들어봤자 건물주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또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뜻이 비슷한 청년 10여 명과 함께 자본금을 모아 용산구 한남동의 한 건물을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 비율에 따라 이익을 정당히 배분하기로 했다. 자금이 넉넉지 않아, 후미진 골목만 돌아다닌 끝에 과거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들의 전용 숙소를 찾았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폐여관이었지만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건물인 만큼 제대로 살려 보고 싶었다”는 그는 이를 개조해 지난해 말 푸통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한국의 미를 알리고자 서울옥션의 미술 대중화 브랜드 `프린트베이커리’와 협업해 하태임, 이사라, 문재이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객실 곳곳에 전시했다.

그러나 개업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로 손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또 한 차례 위기를 겪게 된다. 외국인 입국자가 급감함에 따라 게스트하우스는 사실상 휴업 상태에 놓였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 랜드마크(상징물)와 상권을 분석한 결과, 게스트하우스 근처 순천향대학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이 병원을 찾는 지방 실습생이 많았지만 근방에 실습 기간(1~2달)에만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마땅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의료 실습생의 경우 단기간 머물기 때문에 원룸 계약도 어렵고,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지내기도 불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푸통게스트하우스 공용 주방. 이곳을 운영하는 김아람 대표는 “고생하시는 의료인에게 80%가량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방을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원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지만, 김씨는 청년들과 직접 매입한 건물이기 때문에 임대업 등록이 가능했다. 그는 “요즘 같은 시기에 의료인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정상가에서 80%가량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방을 드리기로 했다. 보증금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지역 병원과 연계한 ‘착한’ 프로젝트로 푸통게스트하우스의 미래도 차츰 밝아지고 있다. 신문로 상권을 살렸던 것처럼, 한남동 뒷골목을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최근 1층에 중화풍 분식점 `왕용’을 오픈해 온라인 배달 앱을 통해 고객들과 만나고 있다. 주변 중식집 수가 적고 가격대도 높은 편이라, 호주머니가 가벼운 지역 청년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그는 “현재 푸통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골목에 청년 사업가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꼬치구이집, 꽃집, 타투숍, 소품가게, 와인숍 등이 대표적이다”라고 소개한다. 과거 이 골목에는 실개울이 지났다고 한다. 김씨는 조만간 옛 실개울 위에 만들어진 가게를 운영하는 이 동네 청년들과 함께 실개울길 축제를 기획할 예정이다.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죽은 상권을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어 그는 “청년 사업자들이 자신만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이 힘든 시기를 견뎌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착한’ 요가원들의 코로나 극복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실내 체육시설·유흥시설 등에 운영 중단 권고(3월22일~4월5일)가 내려지기 전에도 업장을 닫고 사태 진정에 동참한 곳이 있다. 바로 요가원들이다. 요가 강사 윤희숙씨는 “정식 협회는 없지만 지난 2월 주요 요가 강사 커뮤니티 등에서 자체 휴업을 하자고 논의한 결과 서울 시내 대부분의 요가원이 생업을 포기하고 문을 닫았다”고 말한다. 요가 강사들은 빈 요가원을 앞에 두고 좌절하지 않았고 이를 상생의 기회로 만들려 노력했다. 윤씨가 운영하는 ‘유솜요가’는 수업이 없어 빈 공간을 연습 장소가 없는 요가 강사들에게 무료로 빌려줬다. 공간 기부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요가매트 사용료 1천원씩을 받아 모은 돈(50만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요가원 ‘요가피플’ 원장 신나영(왼쪽)씨가 프리랜서 요가 강사들을 위한 수업을 준비 중이다.

요가 강사 신나영씨도 과거 요가 전문지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이력을 살려 `착한’ 활동에 나섰다. `숨은 고수’인 요가 강사들을 발굴해 인터뷰한 글과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yoga_people_)에 올렸다. “진정성을 갖고 요가 수업을 진행하는 요가 강사들을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가 지난 두 달간 진행한 인터뷰만 해도 30여 건에 달한다. 무명의 프리랜서 요가 강사들이지만 저마다 개성을 가진 실력자들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해 신씨가 운영 중인 요가원 ‘요가피플’ 역시 개방했다. “당분간 이곳에서 요가 강사들이 자신만의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5월 말부터 `인요가+천연샴푸 만들기’ 등 환경을 생각하는 독특한 수업을 만나볼 수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김아람·요가피플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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