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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로 직장인들 중림동에서 점심
공덕동 주민은 남대문시장에서 장봐
염천교수제화거리엔 ‘젊은 점포’ 유입
도시 걷는 즐거움 향유 회사원 많아져
‘주민 함께 운영하는 모델’로 전환 필요
‘교통대란 초래, 지역상권 위축, 도심발전 저해하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조성사업 결사반대’ ‘대체도로 없는 서울역고가 공원화사업 지역경제 무너진다’ ‘시민참여 경청 없고 대체도로 신설 없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사업 절대반대’.
서울역 고가를 보행길로 재생한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하던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역 일대에 나부끼던 펼침막의 구호들이다. 보행길로의 재생에 대해 남대문시장, 회현동, 중림동, 서계동, 염천교수제화거리, 서계동의 봉제업, 시민사회 등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다. 이어 서울로 7017이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2017년 5월20일에 보행로이자 공중정원으로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거의 모든 전문가의 평가와 여론 또한 부정적이었다.
‘뜨겁다, 춥다, 그늘이 없다, 바닥이 콘크리트라서 문제다, 나무가 왜소하다, 나무가 불쌍하다, 설계가 맘에 안 든다’ 등의 비판과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비교하며 우려하는 내용도 많았다. 공공사업이 논란을 빚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시종일관 뭇매를 맞으면서도 부침 없이 진행된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서울로 7017’ 개장 이후 활성화된 지역상권
길인지 공원인지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거듭하며 서울로는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첫 1년 동안 서울로는 1천만 명이 이용했고 남대문시장도 소매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언론 기사가 있었다. 서울로가 개장하던 초기에는 차량 정체도 있었으나 곧 해소됐고, 지역상권은 꾸준히 살아나고 있다. 이어 만리재로에는 새로운 상권이 만들어지고 있다. 염천교수제화거리에도 젊은 감각의 점포가 들어오고 입면 환경 개선이 꾸준히 진행돼 다소 안정을 찾고 있다. 청파동의 봉제업도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서울로의 동쪽은 고층 상업지역인 데 비해 서쪽은 서울역의 뒤편으로 저층 주거지이자 덜 활성화돼 있어 청파로와 중림동, 서계동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며,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중림로와 만리재로 성요셉거리가 대표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곳이다. 서울역 주변이 서울로로 인해 ‘상전벽해’ 됐다고 놀라는 이가 많다.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림로 보행문화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할 때 일각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가 컸으나 다행히 그런 우려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주민, 상인들과 함께 수차례 워크숍을 하면서 많은 주제를 다뤘다. 차도를 좁히고 인도를 넓혀 보행로를 조성한다는 시의 입장에 상인들은 처음에는 반대했다. ‘차가 다니기 수월해야 장사가 잘된다’는 상인들에게, 보행이 밥 먹여준다는 여러 도시의 사례를 들려주자 수긍했다. 이처럼 상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이미 많은 학습을 했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중림로와 만리재로에 상권이 뜰 것을 기대하고 들어온 상가도 있었으나 기대만큼은 아니었던지 다른 곳으로 떠난 점포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천천히 그리고 적당한 활성화가 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중림동의 주민이면서 상업을 하는 분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그리고 주 이용자가 관광객보다는 중림동 주민과 주변 회사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 사는 주민이면서 장사하는 점포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면 거리는 유지된다. 개인의 이익과 지역에 대한 애착이 균형을 잡고 있어서다. 점심시간에는 식당마다 기다리는 줄이 좀 있으나 번잡하지는 않다. 회사원들 회식이 끝난 시간이나 주말은 한산하다.
서울 도심 속 공중정원길이 된 ‘서울로 7017’
이제 서울로는 한여름 대낮과 맹추위를 제외하고는 산책 나온 주민과 사무원들, 서쪽에서 남대문시장으로 장보러가는 주민들, 동쪽에서 공덕역이나 충정로역으로 지하철 타러 가는 직장인들, 그냥 휴식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서울로로 인해 도시를 걸어다니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회사원이 많아졌다. 점심을 먹으러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오는 회사원도 많아졌다. 그 이전에는 아예 서울로의 동쪽과 서쪽은 다른 생활권이었는데 정말 많은 변화가 따라왔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객은 거의 없으나 작년까지는 외국인 관광객과 연구자도 많았다. 이제는 시멘트보다 녹지가 많은 구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늘막은 드물지만 대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다. 화분을 따라 천천히 보행하며 식물을 관찰하는 재미도 많고, 시민은 나무 그늘 아래 화분 벤치에서 오후의 땡볕을 즐기기도 한다. 중림동, 회현동, 서계동 주민과 서울역 일대 회사원에게 이제는 너무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지역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였으니 서울로 이용자가 몇 명인지가 의미는 있으나 너무 그것 자체의 정량적 수치에 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울로가 명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 그 의도대로 ‘보행을 활성화하고 있는가’와 ‘동과 서의 균형적 발전과 지역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서울로에 수많은 시민이 온다 해도 그것만 보고 가버리면 그 존재 의미는 반감된다.
서울로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미국의 어느 교수가 던졌던 질문이 가장 신선했고 깊었다. “서울로로 인해 주변 지역은 어떻게 변했으며 지역상권은 어느 정도 활성화되었나요?” “서울로로 인해 보행은 어느 정도 활성화됐나요? 보행의 내용은 어떻게 변화했나요? 예를 들어 보통 200m를 걷던 사람이 300m를 걸었다든지 하는 변화 말이에요.” 이 질문은 서울로를 이용하는 사람 수를 세고 그 수에 안심하는 우리 행태를 성찰하게 했다.
1970년 준공 당시 서울역 고가도로
이제 서울로의 숙제는 ‘커뮤니티에 의한’(by community)이다. 주변에는 사람과 문화자원이 많다. 행정이 잘 관리하고 주민은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자가 기획하고 주민은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시민들이 사랑하고 긍지로 여기며 그들과 함께 운영하고 관리하는 단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공 공간의 새로운 운영 모델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백해영 서울역일대도시재생지원센터장,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