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2015년 옛 질병관리본부 터에 들어서
도시재생 대표 사례…싱크탱크 거듭나
청각장애인 맞춤 통역 서비스 등 개발
“시민에게 이로운 사회 혁신 추진할 것”
지난 5월29일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5주년 기념 ‘다시, 함께, 나아가는’ 이노페스티벌에서 황인선 서울혁신파크센터장이 환영사를 전하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제공
2011년 독일에 있던 낡은 양조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베를린 슈프레강 주변에 설립된 이 양조장은 현대사회를 맞아 그 쓰임새를 다해 폐공간이 됐지만, 독일 정부에 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다시금 활기를 찾았다.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청년 스타트업 창업 단지 `팩토리 베를린’이다.
동서독 통합 뒤 경제적 가치를 이끌어갈 핵심 시설이 없던 베를린은 이 낡은 양조장의 ‘변신’ 덕분에 `트위터’를 비롯해 온라인 음악 유통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업체 `로켓 인터넷’ 등이 입주한 세계적인 창업 단지로 발돋움했다. 실제로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조사전문기관 `스타트업게놈프로젝트’에 따르면 베를린은 세계 도시별 스타트업 생태계 가운데 7위로 급부상했다. 약 4년 동안 1300개의 스타트업이 새로 생겨난 것이다. 독일 스타트업이 받은 투자금액 가운데 63%가 베를린에 집중된 결과 현재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도 ‘한국형 팩토리 베를린’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5월29일 5주년 기념행사를 연 서울혁신파크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혁신파크는 2015년 은평구 녹번동 옛 질병관리본부 터에 들어섰다. 애초 이곳은 웰빙경제문화타운 조성,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건립, 한국예술종합학교 유치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혁신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2013년 5월 ‘서울혁신파크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당시 박 시장은 서울혁신파크를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시민과 혁신가가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불평등, 불공정,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놀라운 실험과 연결을 시도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5주년 기념 ‘다시, 함께, 나아가는’ 이노페스티벌에서는 이풀약초협동조합, 시소 등 입주 단체와 함께 5주년 기념집 <미래를 만져보실래요?>의 출간기념회를 했다. 서울혁신파크 제공
이후 질병 연구 등 국민 건강을 수호하던 이곳 10만9천여㎡에 이르는 넓은 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의 산실이자 싱크탱크로 거듭났다. 실제로 참여하는 주체와 연구 주제도 다양하다. 개인에서부터 사회적경제기업, 협동조합, 비정부기구(NGO) 등이 머리를 맞대고 식량·에너지 문제, 환경오염 등 기존 방식으로는 쉽게 풀리지 않던 사회 난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왔다.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인 만큼 기존에 있던 공간의 다양한 활용도 눈길을 끈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와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되는 `공유동’, 대중문화 공동 작업장이 있는 `극장동’, 서울시식생활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식문화 실험 공간 `맛동’ 등 건물명과 쓰임새도 각양각색이다. 혁신파크라는 이름답게 혁신가를 위한 공간도 따로 있다. 혁신가 입주 공간 `미래동’, 혁신가 입주와 다목적 실험 공간인 `상상청’, 혁신가를 위한 연수 공간 `연수동’이 대표적이다.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우드파크’는 서울혁신파크 내에 조성된 공용목공작업장으로, 시민에게 목공의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목공 아이디어를 스스로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시민과 함께 기록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건립된 `서울기록원’, 서울시 지원조직과 시민 편의 공간 `참여동’ `청년청’, 청년과 시니어라면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대 공간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 등이 있다.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는 `50플러스세대’(50~64살)를 위한 다양한 모임과 학습이 가능하다. 미래 혁신가를 위한 어린이 복합 문화시설 `어린이공간’, 시민과 혁신가의 만남 공간 `연결동’도 열린 공간이다.
‘도시재생’이라는 본래 취지에 어울리는 공간도 눈에 띈다. 폐수처리장으로 사용됐던 건물을 활용해 예술 실험을 하는 공간 `예술동’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곳의 서울시립미술관(SeMA) 창고는 원래 시약창고로 사용되던 490㎡ 규모의 건물이었다. 철거 대신 오래된 흔적을 재치 있게 살려 전시공간으로 ‘재생’했다. 이곳에서 그동안 신진작가와 혁신파크에 입주한 사회적 예술가들의 협업이 진행됐다. 시민이나 일반 기획자, 미술인도 기획안 심의를 거쳐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이밖에도 펼침막, 피아노처럼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쓰임을 모색하는 `재생동’, 디지털 기반의 제작 공간과 적정기술을 연구하는 작업장 `제작동’이 있다.
황인선 서울혁신파크센터장은 “미국의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의 주장처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로운 시선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다시 표현할 때 비로소 시민에게 이로운 사회 혁신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서울혁신파크가 추구하는 혁신의 본질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지난 5년간 서울혁신파크에선 어떤 혁신이 있었을까.
우선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문자 통역 쉐어타이핑’ 모델이 실체화됐다. 에이유디(AUD)사회적협동조합은 장애로 인한 선택권(학습권, 참여권, 알권리, 정보습득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수화통역뿐 아니라 문자·구화통역 등 구체적인 서비스를 마련했다. 건강, 쓰레기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혁신을 발견한 이들도 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은평구에서 개인 주치의 서비스를 운영하며 적은 비용으로도 지역주민이 주치의로부터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취약계층을 고용해 버려진 장난감을 재가공해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금자동이’도 눈길을 끈다. 90% 가까이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장난감은 땅속에 매립되면 500년 이상 지나야 분해된다. 금자동이는 이런 버려진 장난감을 분해한 뒤 재질별로 분류한다. 분류된 부품은 장난감학교 ‘쓸모’를 통해 새로운 장난감으로 다시 만들어진다. 장난감을 사지 않고 고쳐 쓰고 빌려 쓰고 다시 활용하는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활용도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인 것이다.
정선애 서울혁신기획관은 “이처럼 서울혁신파크는 지난 5년 다양한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혁신파크는 앞으로 ‘도시의 풍경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도시 전환’의 시험대 구실을 할 계획이다. 그 경험을 도시 전체로 확산해나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