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찰음식 강의로 부처님 마음 전해요”

스님들의 첫 협동조합 ‘템플셰프’ 이사장 동원 스님

등록 : 2020-06-1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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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대 사찰음식 전문 비구니 6명

취약층에 봉사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건강 밥상 만들며 마음도 함께 수련

“음식 통해 혼자 아닌 것 느끼게 할 터”

6월5일 오후 종로구 사찰음식 전문교육관 ‘향적세계’에서 스님들 첫 협동조합 ‘템플셰프’ 이사장인 동원 스님이 수강생들에게 강습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마음을 죽처럼 조심스레 잘 저어주면 달라지죠.”

지난 6월5일 오후 종로구 우정국로 사찰음식 전문교육관 ‘향적세계’에서 스님들 첫 협동조합 ‘템플셰프’의 이사장인 동원 스님의 강습이 열렸다. 향적세계는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운영한다.

이날 요리 수업 메뉴는 연근 유미죽, 흑미자 두부 조림, 표고버섯 강정 세 가지였다. 동원 스님은 “죽을 많이 저으면 부드럽고 맛있어진다”며 마음 수행에 연관 지어 설명했다. 쌀뜨물과 참기름 한두 방울로 깊은 맛을 내는 방법도 알려줬다. 연근도 강판으로 갈아 섬유질을 살렸다. 버섯과 두부를 차례로 튀기고, 양념으로 설탕 대신 조청을 넣었다. 스님은 “모든 제철 채소는 나름의 단맛과 짠맛이 있어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야 한다”며 “최선을 다하다 보면 깨달음이 얻어지는 것은 사찰음식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습에 앞서 동원 스님은 20여 분간 사찰음식의 특징을 설명했다. 요리라는 친숙한 소재로 어렵고 딱딱한 법문을 쉽게 풀어냈다. 3시간 강습 뒤 <서울&> 인터뷰에서 스님은 “사찰음식 가운데 김치 만들 때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배추에서 불성을 봤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고 난 뒤 땅에 뿌리를 내리기 전에 배추가 시들시들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 배추가 생생해졌다. 배추는 자라면서 속도 꽉 차졌다. 빗물도 벌레도 침입 못 하도록 배추는 스스로 성장했다. 배추가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그 뒤로 채소를 보는 눈이 더 즐거워졌단다.

동원 스님은 회향의 길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출가한 지 20여 년 동안 사찰음식으로 닦은 공덕을 세상으로 되돌려 중생에게 널리 이익이 되게 하려 한다.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관심도가 높아졌지만, 많은 사람이 접하기 여전히 어렵다. 특히 취약계층에게 문턱을 낮춰 봉사하며 다가가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비구니 스님 5명(혜범, 동화, 경현, 진홍, 보선 스님)과 지난해 뜻을 모았다. 사찰음식 강의를 하는 인연으로 만난 20~50대 스님들로, 서로 다른 절에 소속돼 있다.

좋은 뜻을 사업으로 이어가려면 물질적인 기반이 필요했다. 한 스님이 사회적기업 얘기를 꺼냈다. 불교계 사회적 경제 지원기관 ‘사람과 사회적 경제’ 문을 두드렸다. 협동조합 교육을 받고 발기인 대회를 거쳐 지난 2월20일 설립등기를 마쳤다. 사업장은 한 스님의 은사 스님이 계신 성북구 수월암 한편에 무상임대로 마련했다. 요리 수업 공간, 휴식 공간 등의 시설을 갖췄다. 나이가 제일 많아 동원 스님이 이사장을 맡았단다. “스님들은 사고가 자유로워 모이기가 참 어려운데, 협동조합 설립한 것만으로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며 웃었다.

템플셰프의 첫 활동은 4월 서울노인복지센터 깍두기 나눔이었다. 코로나19로 복지시설의 휴관이 길어지면서 간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어르신들을 위해 500인분을 준비했다. 무 250개는 채소가게를 하는 불자가 후원해줬다. 동원 스님은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 오신채와 젓갈을 쓰지 않은 ‘건강한’ 깍두기를 만들었다. 물론 맛도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에는 자치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 집에서 손수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배우고, 일부는 싸 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된장찌개 등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 주고, 끓는 물만 부어 먹을 수 있게 ‘밀키트’도 제공하는 거예요.”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도시락, 밑반찬을 만들어 어르신들이 노인복지센터에서 살 수 있게 하는 일도 준비하고 있다. 6월29일 교육장 개관에 즈음해 직장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며 소통하는)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도 연다. 템플셰프의 프로그램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음식 수업이다. “음식을 매개로 애환도 들어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요즘 템플셰프 스님들은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을 담을 공간을 찾고 있다. 장류 등 발효 음식은 사찰음식에서 가장 중요하다. 직접 담가 먹어야 하는데 수도권에서 공기 좋고 물 좋은 공간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하지만 주어진 대로 천천히 가자고 서로 다독거리고 있어요.”

동원 스님은 현재 충남 서천의 절과 서울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매주 2회 사찰음식 고정 강습을 하고 동국대 강의도 있다. 스트레스 관리를 묻자 스님은 부처님 말씀으로 답한다. “스트레스를 받을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건 나예요. 찰나의 순간을 잡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정신의 끈을 놓지 말고 순간순간 마음의 흐름을 잡는 거죠.”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데 대해서는 자연에 휴식을 주는 시간이라 여겼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가 자연에서 많은 걸 얻어 살고 있는데, 조급해하지 말고 자연에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지냈으면 한다”고 말하며 동원 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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