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마음의 꿉꿉함도 깨끗이 빨아줍니다”

등록 : 2020-08-20 16:00 수정 : 2020-08-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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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동정부’ 주민제안사업으로 선정

거동 불편한 주민은 빨랫감 배달도 돼

취약계층 안부 확인도…일석이조 효과

“빨랫감 운반하는 전용차량 생겼으면”

주민 김종순씨(왼쪽)가 6일 중구 중림동 중림행복빨래방에서 도우미 박혁용씨와 함께 건조기에서 빨랫감을 꺼내고 있다.

중구 중림동 중림종합사회복지관 1층 주차장에 마련된 중림행복빨래방 안으로 들어서자 세탁기와 건조기, 선풍기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6일 오전 찾아간 중림행복빨래방에는 마침 빨래를 하러 온 주민 두 명이 의자에 앉아 빨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탁기 없는 사람은 진짜 좋아요. 저는 세탁기가 있는데, 있든 없든 좋아요. 너무 잘해놨어.”

이불 빨랫감을 들고 중림행복빨래방에 온 이선경(62)씨는 집에 세탁기가 있어도 혼자서 이불 빨래를 하려면 힘든데, 중림행복빨래방이 생긴 뒤로 이곳에서 매번 이불 빨래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여기는 건조기까지 있어 마음에 든다”며 “특히 장마철이라 집 안이 눅눅한데, 이불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니 너무 좋다”고 했다.


집에 세탁기가 없는 김종순(72)씨는 지금까지 부피가 큰 빨래를 하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빨래방이 생긴 뒤로는 이불 빨래는 이곳에서 하고, 작은 빨래는 집에서 직접 손빨래로 해결한다”며 “운영자도 친절하게 대해줘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와 김씨는 빨래방이 생긴 뒤로 한 달에 한 번꼴로 빨래방에서 이불 빨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중림행복빨래방이 근처 저소득층과 홀몸 노인들의 생활 환경 개선은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중구 중림동 주민센터는 지난 3월 지역 내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중림행복빨래방을 만들었다. 쪽방, 고시원 등에 거주해 세탁기를 설치할 여건이 안 되거나, 거동이 불편해 이불 등 부피가 큰 세탁물을 처리하기 어려운 가구를 위해 만들었다.

중구는 지난해 1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동정부과’를 신설해 예산안 편성권을 동 주민센터에 줘 주민이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직접 제안하도록 했다. 중림동 주민센터는 지난해 9월과 10월 주민제안사업을 공모해 10여 개 사업을 선정했는데, 그중 하나가 중림행복빨래방이다. 주민들이 직접 ‘우리 동네, 우리 이웃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이윤진 중림동 주민센터 복지건강팀 주무관은 “주민들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빨래방을 운영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운영하게 됐다”며 “몇 개월 운영해보니 주민 만족도도 커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중림행복빨래방은 중림종합사회복지관 1층 주차장 내 약 3평 규모의 컨테이너 부스 안에 21㎏ 용량 드럼세탁기 1대와 16㎏ 용량 건조기 1대를 갖추고 있다. 중림동에 거주하는 저소득 주민들은 무료로 빨래방을 이용할 수 있는데, 주로 근처 홀몸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빨래방에는 빨래방 도우미 한 명이 운영을 맡고 있다. 빨랫감 수거부터 세탁, 건조, 배달까지 담당한다. 중림행복빨래방 도우미 박혁용(58)씨는 “보통 하루 7~8회 정도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데, 한 번 세탁할 때마다 보통 1시간30분~3시간가량 시간이 걸린다”며 “소문이 나서 처음 시작할 때보다 손님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중림행복빨래방은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배달 서비스도 하고 있다. 전화로 신청하면, 박씨가 직접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한 뒤 다시 배달까지 해준다.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의 안부도 확인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빨래방은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박씨는 “시간은 이렇게 정해져 있지만, 주민들 편의를 위해 좀 더 빨리 시작하기도 한다”며 “주로 거동이 불편한 홀몸 노인들한테 빨랫감 배달 신청을 받는데, 안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중림행복빨래방은 입소문이 돌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과 열린의사회에서 사례 연구를 하러 오기도 했다. 쪽방촌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사는 저소득층에는 아무래도 건조기를 사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데, 중림행복빨래방과 같은 ‘공동빨래방’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윤진 중림동 주민센터 복지건강팀 주무관은 “저소득층에 비싼 건조기는 쉽게 들여놓을 수 있는 가전제품이 아니라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빨래방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아보고 갔다”고 했다.

중림동 주민센터는 이용자가 예상보다 많아 세탁기와 건조기를 늘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빨래를 수거하고 배달하는 데 주민센터 찾동 업무용 차량을 임시로 빌려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 운행에 한계가 있어 주 1회만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신청을 받는다.

이 주무관은 “이용 주민 입장에서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하루빨리 전용차량을 마련해 주민이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빨랫감을 운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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