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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사회관계망 취약층 늘어나
무빈소·1일 가족장 등에 추모식 더해
조문객 수 걱정 없는 장례 서비스 제시
복합추모공간, 남산 자락에 7월 열어 “조합원 3만명 되면 장례문화 바뀔 것”
복합추모공간, 남산 자락에 7월 열어 “조합원 3만명 되면 장례문화 바뀔 것”
김상현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이 9일 중구 충무로 복합추모공간 ‘채비‘ 앞에서 추모형 작은장례 서비스와 공간의 특성에 대해 말하며 웃고 있다.
중구 충무로 남산 북쪽 자락 동네의 한 상가 건물 2층. 단독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시야가 확 트인다. 잔디밭 옆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갤러리 카페 같은 통유리의 공간을 만난다. 50여 평 실내는 작은 공연장 같다. 꽃장식의 연단과 함께 한쪽 벽면엔 사진작품이 전시돼 있다. 입구 쪽엔 대형 원형 시계가 안팎에서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뒤편에는 작은 회의실과 카페 시설을 갖췄다. 상조업계 최초의 협동조합인 한겨레두레가 이번 여름에 문을 연 복합추모공간 ‘채비’의 모습이다.
9일 오전 <서울&>과 만난 김상현(60) 한겨레두레협동조합(한겨레두레)연합회 회장은 공간 채비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채비를 “삶과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추모식과 더불어 조합원 모임과 행사, 문화행사를 치를 수 있게 이뤄졌다. 생활공간에 어울리도록 밝게 꾸며 혐오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게 했다. 한겨레두레는 지난 10년 동안 지나치게 상업화된 장례문화를 바꾸기 위해 달려왔다. 그간 넘어지기도 하고 뒷걸음질 치기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회원 조합 9곳과 연합회가 있으며 조합원은 3500명이다. 그간 1500건의 장례를 치렀다. 무연고 고독사 등 저소득층 장례지원 봉사도 이어왔다. 특히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장례용품 원가를 공개하고 직거래 공동구매로 장례비용을 낮췄다. 뒷돈은 받지 않고, 납골당 등 리베이트는 조합원에게 되돌려준다. 김 회장은 “초기엔 한겨레두레 장례지도사들을 내쫓는 장례식장도 있었고,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다”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 한계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 한겨레두레는 장례문화 변화를 끌어낼 새로운 장례 서비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인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프리랜서 등 사회적관계망이 약한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변화에 주목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2013년 은퇴한 김 회장 주변에도 조문객 수를 걱정하는 지인이 적잖다. 그의 아내 역시 전업주부인 딸만 있는 부모의 장례식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조합원 설문조사 등으로 조문객 수 걱정 없이 추모와 애도, 위로가 있는 장례 서비스를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지난해 무빈소 가족장, 1일 가족장, 삼일장에 추모식을 더해 상품을 구성하고 사업을 계획했다. 서비스 이름은 조합원 공모로 채비로 정했다. ‘미리 갖춰 준비하는 일’과 ‘채우고 비운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이다. 추모형 작은장례로 콘셉트를 정하고 보니 가장 큰 걸림돌은 공간 문제였다. 김 회장은 “작은장례는 일반 장례식장에서 협조를 받기 어렵고, 화환이 쭉 늘어선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치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무빈소 장례 공간이 있는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의 경우 특실 사이 자투리 공간이라 추모식을 하기 어렵다. “‘의식은 간소하게, 추모는 깊이 있게’를 말로만 해서는 어렵다는 생각에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지난 7월 충무로에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고급 매장) 형태로 복합추모공간을 열었다. 공간 이름은 서비스 이름 ‘채비’를 그대로 썼다. 김 회장은 작은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장례업체들과 채비의 차별점으로 추모식 프로그램을 꼽았다. 채비의 추모식은 추도사, 추모 영상 애도사, 고인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를 쓴 ‘메모리얼 포스트’ 등의 순서로 80~100분가량 장례지도사 사회로 진행된다. 온라인 영상 제공으로 추모식에 참석 못 하는 가족도 함께할 수 있다. 예컨대 무빈소 가족장의 경우, 돌아가신 첫날 고인을 안치실에 모시고, 가족끼리 집에서 사진과 유품을 정리하면서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둘째 날 오후 장례지도사가 염습하고, 저녁에 추모공간에서 식을 연다. 다음날 발인이 이뤄진다. 김 회장은 고인을 추억할 게 특별히 없다고 걱정하고 주저하는 이들에게 “아무리 관계가 소원했던 가족이라도 기억과 추억으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회장은 은퇴 뒤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엔 경영지식 나눔 활동도 한다. 친구 소개로 한겨레두레 조합원이 되었다. 조합의 경영 자문부터 시작해 서울조합 이사장, 그리고 연합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그사이 사진 교실에서 사진 찍기를 배워 무연고자 영정사진 봉사를 해왔다. 채비 프로그램 강의도 한다. 그는 장례문화 변화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조합으로 키우고 싶은 꿈을 꾸며 조합원 3만 명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9일 오전 <서울&>과 만난 김상현(60) 한겨레두레협동조합(한겨레두레)연합회 회장은 공간 채비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채비를 “삶과 죽음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추모식과 더불어 조합원 모임과 행사, 문화행사를 치를 수 있게 이뤄졌다. 생활공간에 어울리도록 밝게 꾸며 혐오감이나 거부감이 들지 않게 했다. 한겨레두레는 지난 10년 동안 지나치게 상업화된 장례문화를 바꾸기 위해 달려왔다. 그간 넘어지기도 하고 뒷걸음질 치기도 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회원 조합 9곳과 연합회가 있으며 조합원은 3500명이다. 그간 1500건의 장례를 치렀다. 무연고 고독사 등 저소득층 장례지원 봉사도 이어왔다. 특히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장례용품 원가를 공개하고 직거래 공동구매로 장례비용을 낮췄다. 뒷돈은 받지 않고, 납골당 등 리베이트는 조합원에게 되돌려준다. 김 회장은 “초기엔 한겨레두레 장례지도사들을 내쫓는 장례식장도 있었고,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다”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은 한계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2015년 한겨레두레는 장례문화 변화를 끌어낼 새로운 장례 서비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1인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프리랜서 등 사회적관계망이 약한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변화에 주목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다 2013년 은퇴한 김 회장 주변에도 조문객 수를 걱정하는 지인이 적잖다. 그의 아내 역시 전업주부인 딸만 있는 부모의 장례식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조합원 설문조사 등으로 조문객 수 걱정 없이 추모와 애도, 위로가 있는 장례 서비스를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지난해 무빈소 가족장, 1일 가족장, 삼일장에 추모식을 더해 상품을 구성하고 사업을 계획했다. 서비스 이름은 조합원 공모로 채비로 정했다. ‘미리 갖춰 준비하는 일’과 ‘채우고 비운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이다. 추모형 작은장례로 콘셉트를 정하고 보니 가장 큰 걸림돌은 공간 문제였다. 김 회장은 “작은장례는 일반 장례식장에서 협조를 받기 어렵고, 화환이 쭉 늘어선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치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무빈소 장례 공간이 있는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의 경우 특실 사이 자투리 공간이라 추모식을 하기 어렵다. “‘의식은 간소하게, 추모는 깊이 있게’를 말로만 해서는 어렵다는 생각에 직접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지난 7월 충무로에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 이미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고급 매장) 형태로 복합추모공간을 열었다. 공간 이름은 서비스 이름 ‘채비’를 그대로 썼다. 김 회장은 작은장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장례업체들과 채비의 차별점으로 추모식 프로그램을 꼽았다. 채비의 추모식은 추도사, 추모 영상 애도사, 고인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를 쓴 ‘메모리얼 포스트’ 등의 순서로 80~100분가량 장례지도사 사회로 진행된다. 온라인 영상 제공으로 추모식에 참석 못 하는 가족도 함께할 수 있다. 예컨대 무빈소 가족장의 경우, 돌아가신 첫날 고인을 안치실에 모시고, 가족끼리 집에서 사진과 유품을 정리하면서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둘째 날 오후 장례지도사가 염습하고, 저녁에 추모공간에서 식을 연다. 다음날 발인이 이뤄진다. 김 회장은 고인을 추억할 게 특별히 없다고 걱정하고 주저하는 이들에게 “아무리 관계가 소원했던 가족이라도 기억과 추억으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김 회장은 은퇴 뒤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엔 경영지식 나눔 활동도 한다. 친구 소개로 한겨레두레 조합원이 되었다. 조합의 경영 자문부터 시작해 서울조합 이사장, 그리고 연합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그사이 사진 교실에서 사진 찍기를 배워 무연고자 영정사진 봉사를 해왔다. 채비 프로그램 강의도 한다. 그는 장례문화 변화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조합으로 키우고 싶은 꿈을 꾸며 조합원 3만 명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디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