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플라스틱 제로’ 생활실천 함께 해요”

생활권 리필스테이션·재사용 수거 공간 만든 서대문구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등록 : 2021-12-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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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과 협동플랫폼 ‘카페 이웃’은 올 한 해 동네에서 무포장 가게를 이용하고, 재사용품을 모아 보내며, 친환경 생활재를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2월8일 오후 카페의 에코 리빙랩에서 주민 도슨트 이은숙 강사가 한 주민과 함께 탈모 두피케어 샴푸를 만들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지난해 공론장 열어 주민 뜻 모아

무포장·재사용 수거·생활재 만들기

‘카페이웃’에서 진행, 900여 회 이용

“주민자치 동네 자원순환거점 필요”

서대문구 명지대 인근 홍은2동 2차선 도로변엔 이색 6층짜리 건물이 있다. 일반 건물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마을주민 개방공간(1~2층)이 있는 공동체주택이다. 1층 ‘카페 이웃’은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협동플랫폼이다. 카페 입구엔 ‘우리 동네 자원순환 현황’ 게시판과 재사용품 수거함이 있다. 굳이 카페에 들어오지 않아도 편하게 재사용품을 두고 가라는 뜻이다. 유리문엔 우리 동네 무포장 가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여긴 뭐 하는 곳일까?

카페 안 작은 무포장 가게 ‘도돌이’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문을 열고 들어가 벽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또 다른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무포장(제로웨이스트) 가게 ‘도돌이’이다. 낭비 없는 순환 생태계를 꿈꾸며 활동가들이 지은 이름이란다. 재사용 용기로 친환경 세제(주방, 세탁)를 리필하고 친환경 생활물품을 살 수 있다. 진열대 아래 공간엔 종이팩, 우유팩 등 재사용품이 모여 있다. 카페 안쪽엔 친환경 생활재를 직접 만드는 소모임공간이 보인다.


‘동네에서 무포장 가게를 이용하고, 재사용품을 모아 보내며, 친환경 생활재를 함께 만드는 것’은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마을언덕사협)이 ‘카페 이웃’과 함께 한 해 동안 공들인 프로젝트이다. 마을언덕사협은 2019년 마을공동체에서 먹고 살고 노는 협동조합을 내걸고 창립했다. 박혜린 마을언덕사협 기획조정팀장은 “저층 주거지가 많은 지역 여건에 맞춰 ‘우리 동네 리필스테이션’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다”고 했다. 재사용을 늘려 ‘플라스틱 제로’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공론장을 거쳐 주민들의 뜻을 모았다. 비헹분섞(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는다) 소모임이 생겼고 올해는 자원순환 활동으로 키워보자고 했다. 숍인숍 콘셉트로 무포장 가게부터 시작했는데, 재사용품 수거와 친환경 생활재 제작을 직접 하는것이 주민들의 체감 효과가 크다는 걸 알게됐다. 자원순환거점 만들기는 서울시 녹색서울실천공모사업으로 추진했다. 카페 안팎에 재사용품 수거 공간을 만들고, 동네재사용처를 확보했다. 우유팩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아이스팩은 홍은2동 주민센터, 플라스틱 병뚜껑은 소셜벤처 ‘로우리트콜렉티브’에서 재활용한다.

재사용을 실천해 보는 1일 강좌도 10여차례 열었다. 양파망을 재사용한 화분 깔개만들기, 재사용품 분리수거 안내 등이 이뤄졌다. 재사용 수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포인트제를 운영했다. 무게에 따라 포인트 도장을 찍어주고 10개를 채우면 다달이 정한 친환경 생활재를 준다.

생활 속 친환경 실천 실험실 ‘에코 리빙랩’ 운영에도 나섰다. 누구든 예약해 노플라스틱 샴푸바와 로션바, 고체치약, 주방비누, 친환경 세제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그린피벗’ 지원사업으로 추진해 지난 10월 문을 열었다. 강사는 이웃에게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는 ‘주민 도슨트’다. 9월에 주민 10명이 16시간 동안 생활재 제조 레시피를 익히는 등의 교육을 받고 도슨트가 됐다.

친환경 세제 리필 코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2월8일 오후 에코 리빙랩에선 이은숙 강사와 주민 한 명이 탈모 두피케어 샴푸를 만들고 있었다. 이 강사는 주민 도슨트 양성과정을 마친 주민이다. 그는 종이에 적힌 제조 레시피를 보면서 재료의 효과를 알려주며 만드는 과정을 알려줬다. 이 강사는 “재료 사는 것과 관리를 집에서 혼자 하기 쉽지 않고, 설령 혼자 하더라도 몇 번 하다 귀찮아져 하지 않게 된다”며 “함께 모여 만들어 집에 가져가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리빙랩을 두 번째 이용한다는 주민은 “시중에 파는 제품과 달리 재료도, 만드는 과정도 다 아니까 제품에 신뢰가 생기고, 직접 만들어 뿌듯하기도 하다”고 했다.

우리 동네 리필스테이션 만들기와 에코리빙랩 운영에 대한 주민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약 8개월 동안 포인트제 이용회원 수는 200여 명, 이용 횟수는 900여 회다. 거점 조성에 협업한 강순영 카페이웃 대표는 “친환경 생활을 실천할 의지가 있는 주민은 많이 늘었는데 이걸 받아줄 곳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활동하면서 만난 주민들이 재사용품이나 재활용품을 가져다줄 곳을 찾기가 힘들다며 동네 안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카페 이웃과 마을언덕사협의 현재 운영 모델엔 한계가 있다. 공간 제약으로 페트병, 비닐, 고철 등은 모으지 못한다. 박 팀장은 “집에서 가장 많이 버려지는 것들을 재사용이나 재활용하는 기반이 동네에 갖춰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동네마다 주민자치로 운영할 수 있는 자원순환거점이 생기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잘 안 될 것부터 걱정하는데, 관리 인력에 대한 지원만 있으면 충분히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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