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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아동복지회를 45년째 후원하고 있는 이원우 현대건설 부사장이 12월21일 창덕궁 옆 한 카페에서 자신의 후원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76년 대학 2학년 때 ‘월 5천원’ 시작
이후 액수 늘리고 가족 기념일에 후원
“많은 사람의 작은 후원, 세상 바꿔
아들도 시작…대대로 후원 가풍 되길”
‘한 계좌당 5천원.’
홀트아동복지회 장기 후원자인 이원우(67) 현대건설 부사장이 1976년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벽에 걸린 펼침막에서 본 구절이다.
당시 대학교 2학년 학생이던 이 부사장은 이 구절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이 부사장은 “대학생이 되면서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5천원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니…’. 이 부사장은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마침 5천원이 있었다. 한 달 용돈이 2만원인 학생에게 5천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홀트아동복지회 건물로 들어가 후원신청을 했다. “‘인생은 한 번인데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첫 후원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평생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 느낌 그대로 이 부사장은 지금까지 45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 오랜 기간 많은 것이 변했다. 그의 후원 규모도 커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마음의 평안과 충만함도 얻게 됐다”는 점이다. 우선 5천원에서 시작한 ‘학생 이원우’의 후원금은 그의 사회적 성장과 함께 계속 커졌다. 이 부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몸담고 있다. 현대건설에서 오랫동안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 현장을 지키기도 했다. 현대건설로 온 해에 결혼한 이 부사장은 1988년 아들을 얻었다. 그 아들이 현재 미국에서 스타트업 회사에 종사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이 부사장은 수입이 높아지는 데 맞춰 후원금도 늘려갔을 뿐만 아니라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나 아들의 입대와 제대, 첫 직장 입사 등 가족의 각종 기념일에도 후원금을 내왔다. 2015~2017년에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홀트아동복지회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정년으로 인식되는 60살을 넘겨 현대건설에서 계속 근무하게 된 때였다. 이 부사장은 “어떻게 보면 이것은 덤으로 일하는 것”이라며 나눔의 마음을 더욱 크게 가지게 됐다. 이 부사장은 후원 활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사회와 인간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고 말한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후원자에게 매달 보내주는 <홀트 소식>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소식지에 실린 입양 가정 얘기를 읽으면서 아동을 입양한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게 되지요. 후원자로서 뿌듯한 마음도 갖게 됩니다.” 그 뿌듯한 마음은 이러한 사랑의 씨앗을 뿌린 홀트아동복지회 창립자인 해리 홀트(1905~1964)에 대한 공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 오리건주 농부였던 해리 홀트는 1954년에 한국전쟁이 남긴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는 곧 농장을 팔아 무작정 한국에 오게 된다. 그가 혼혈아 등 8명의 한국인 전쟁고아를 입양하고 다른 미국인에게도 입양을 주선한 것이 홀트아동복지회 활동의 시작이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의 많은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고아들을 도왔던 홀트 선생의 나눔정신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홀트의 나눔정신뿐만 아니라 이 부사장 ‘자신의 후원철학’도 점차 형성돼갔다. “거대한 토목공사를 주로 하는 현대건설에서 일하다보니까 나 혼자 잘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배우게 됐습니다.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사회가 건강하게 잘 구성돼 있어야 구성원들이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큰일보다는 많은 구성원의 작은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사장은 남을 돕는 후원은 그 ‘작은 참여’에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런 이 부사장의 지속적인 후원 활동과 철학을 곁에서 봤기 때문일까. 이 부사장의 아들 이예겸도 20살이 되던 2008년 홀트아동복지회에 후원을 시작했다. 이 부사장은 “아들의 후원 활동도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아들도 후원 속에서 사회와 이웃을 보는 눈을 더 크게 키워가기를 바란다”고 한다. 아니, 아들의 아들 등 후대로까지 후원이 계속 이어지면서 후원 활동이 이 부사장 집의 가풍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부사장의 후원 인생은 2년 뒤쯤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대건설 등기이사인 그는 임기를 마치는 2년 뒤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인 돌봄 등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해리 홀트의 따님인 말리 홀트(1935~2019) 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께서 살아 계실 때 홀트일산복지타운을 방문한 저를 직접 안내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저도 언젠가 이 아이들을 도와줄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퇴하면 전원주택에 가고자 한다는데, 저의 소망은 몸으로 봉사할 수 있는 홀트일산복지타운에 가는 것입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후원하면서 자신도 함께 성장해왔던 이 부사장은 곧 다가올 70대에도 여전히 봉사와 후원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당시 대학교 2학년 학생이던 이 부사장은 이 구절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이 부사장은 “대학생이 되면서 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5천원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니…’. 이 부사장은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마침 5천원이 있었다. 한 달 용돈이 2만원인 학생에게 5천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홀트아동복지회 건물로 들어가 후원신청을 했다. “‘인생은 한 번인데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 첫 후원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평생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 느낌 그대로 이 부사장은 지금까지 45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 오랜 기간 많은 것이 변했다. 그의 후원 규모도 커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마음의 평안과 충만함도 얻게 됐다”는 점이다. 우선 5천원에서 시작한 ‘학생 이원우’의 후원금은 그의 사회적 성장과 함께 계속 커졌다. 이 부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지금까지 40년 동안 몸담고 있다. 현대건설에서 오랫동안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 현장을 지키기도 했다. 현대건설로 온 해에 결혼한 이 부사장은 1988년 아들을 얻었다. 그 아들이 현재 미국에서 스타트업 회사에 종사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변화와 함께 이 부사장은 수입이 높아지는 데 맞춰 후원금도 늘려갔을 뿐만 아니라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나 아들의 입대와 제대, 첫 직장 입사 등 가족의 각종 기념일에도 후원금을 내왔다. 2015~2017년에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홀트아동복지회에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정년으로 인식되는 60살을 넘겨 현대건설에서 계속 근무하게 된 때였다. 이 부사장은 “어떻게 보면 이것은 덤으로 일하는 것”이라며 나눔의 마음을 더욱 크게 가지게 됐다. 이 부사장은 후원 활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사회와 인간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고 말한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후원자에게 매달 보내주는 <홀트 소식>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소식지에 실린 입양 가정 얘기를 읽으면서 아동을 입양한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게 되지요. 후원자로서 뿌듯한 마음도 갖게 됩니다.” 그 뿌듯한 마음은 이러한 사랑의 씨앗을 뿌린 홀트아동복지회 창립자인 해리 홀트(1905~1964)에 대한 공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국 오리건주 농부였던 해리 홀트는 1954년에 한국전쟁이 남긴 전쟁고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는 곧 농장을 팔아 무작정 한국에 오게 된다. 그가 혼혈아 등 8명의 한국인 전쟁고아를 입양하고 다른 미국인에게도 입양을 주선한 것이 홀트아동복지회 활동의 시작이었다. “공부하면 할수록 자신의 많은 재산을 쏟아부으면서 고아들을 도왔던 홀트 선생의 나눔정신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도 커져갔습니다.” 홀트의 나눔정신뿐만 아니라 이 부사장 ‘자신의 후원철학’도 점차 형성돼갔다. “거대한 토목공사를 주로 하는 현대건설에서 일하다보니까 나 혼자 잘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배우게 됐습니다.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사회가 건강하게 잘 구성돼 있어야 구성원들이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큰일보다는 많은 구성원의 작은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사장은 남을 돕는 후원은 그 ‘작은 참여’에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이런 이 부사장의 지속적인 후원 활동과 철학을 곁에서 봤기 때문일까. 이 부사장의 아들 이예겸도 20살이 되던 2008년 홀트아동복지회에 후원을 시작했다. 이 부사장은 “아들의 후원 활동도 오랫동안 계속되면서 아들도 후원 속에서 사회와 이웃을 보는 눈을 더 크게 키워가기를 바란다”고 한다. 아니, 아들의 아들 등 후대로까지 후원이 계속 이어지면서 후원 활동이 이 부사장 집의 가풍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부사장의 후원 인생은 2년 뒤쯤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대건설 등기이사인 그는 임기를 마치는 2년 뒤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홀트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인 돌봄 등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해리 홀트의 따님인 말리 홀트(1935~2019) 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께서 살아 계실 때 홀트일산복지타운을 방문한 저를 직접 안내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저도 언젠가 이 아이들을 도와줄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은퇴하면 전원주택에 가고자 한다는데, 저의 소망은 몸으로 봉사할 수 있는 홀트일산복지타운에 가는 것입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후원하면서 자신도 함께 성장해왔던 이 부사장은 곧 다가올 70대에도 여전히 봉사와 후원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