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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웃과 재능 나누는 용산구 구민강사입니다!”

등록 : 2022-03-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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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재능나눔 평생교육 ‘서로서로학교’ 강사 3인의 이야기

동화 구연, 정원 만들기, 악기 강의로 주민에게 ‘삶의 문화’ 전달

용산구의 재능나눔 평생교육 사업 ‘서로서로학교’ 주민 강사 3인이 <서울&> 인터뷰에 앞서 강의 시연을 하며 지난 2월28일 오후 한남동 용산구평생학습관 강의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김은경·조지녀·이미영 용산구 서로서로학교 강사.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마치 학예회 발표장 같았다. 2월28일 오후 한남동 용산구평생학습관 강의실에서 카메라 앞에 선 서로서로학교 강사 3명은 학예발표를 하듯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은경(53)씨는 우쿨렐레로 애니메이션 <라바>의 주제곡을 연주했다. 조지녀(45)씨는 생명력이 강해 집에서 키우기 좋은 남천나무 화분을 소개하며 전지가위로 능숙하게 가지를 다듬었다. 이미영(54)씨는 ‘철수’라고 부르는 인형을 손에 끼워 움직이며, 명랑한 목소리로 동화 ‘데굴데굴 은방울’을 맛깔나게 구연했다. 이들은 각자 관심과 재능은 다르지만 이웃과 배움을 나누는 구민강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용산구는 2015년부터 재능이 있는 구민을 강사로 모집해 소규모 강좌를 열 수 있게 지원하는 서로서로학교를 운영해오고 있다. 누구나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시스템으로 구민 주도의 평생학습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재능나눔 사업이다. 그동안 약 2천 명의 주민이 서로서로학교를 이용했다. 교육 장소는 평생학습관에서 시작해 복지관·학습공동체 등이 희망하는 곳도 아우르고,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갔다.

서로서로학교 강좌 주제는 뜨개질, 건강체조, 악기, 영어회화, 미술 등 생활기술에서 전문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열려 있다. 강좌는 수강생 5인 이상일 때 개설되며 4차시 이상, 최대 12차시로 구성할 수 있다. 구민강사는 용산구 자원봉사활동지원조례에따라 회차당 1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구민강사양성과정은 교육 콘텐츠 개발과 강의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있다. 현재 서로서로학교에는 약 130명의 구민강사가 등록했다.

‘서로서로학교 강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세 강사는 ‘소확행’ ‘내 친구’ ‘공동체’라고 대답했다. 이미영씨는 “재능기부를 통해 이웃과 배움을 나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소확행’”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동화구연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2016년 용산구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동화구연지도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수료생들과 학습동아리(이야기나라)를 꾸려 함께 연습하며 동네에서 나눔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다음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구청을 통해 전래동화, 구연동화 강의를 요청해 왔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개최를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호랑이 관련 전시,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후암·갈월동 복지회관에서 주민모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서로서로학교 동화구연 수업을 8주간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방법, 아이들과 만들기를 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마지막 시간엔 각자 시범수업을 했는데 엄마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전했다.


리본 공예, 인형 만들기 등은 다른 서로서로학교 강사에게 배웠다. 동아리 회원들은 역량을 키우기 위해 회비를 모아 인형 등 도구, 노래 등의 강의를 주기적으로 듣는다. 그는 “서로 협력해 배우고 가르치니 비용부담도 훨씬 덜하다”고 했다. 이씨는 “여기까지 올지 몰랐다”며 “‘한번 배워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배운 걸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나눌 수 있어 참 좋다”고 했다. 강사가 되니 더 배워야 하고, 강의하려면 더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는 게 있단다. 그는 “(자신이)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이끌어가고 있다”며 “구민강사 활동이 배움과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조지녀씨는 서로서로학교 강사를 “수다떨듯 편안하게 배움을 나눌 수 있는 ‘내 친구’”라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서울숲 도시정원사 과정을 마친 뒤 자원봉사로 활동을 이어왔다. 그사이 유아숲 등 숲 관련 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자연에 관심이 많아 정원에 대해 배우고 활동을 시작해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와 겨울철 계절 영향으로 쉬고 있던 때 용산구 교육포털에서 구민강사양성과정을 보고 ‘동네에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다.

“구민강사는 ‘소확행·내 친구·공동체’…배움과 자신감 커지네요”

양성과정 뒤 소규모 무료강좌 열어

주제는 생활기술부터 전문분야까지

온라인 스튜디오, 지원 개선 의견도

2월24일 오후 용산구평생학습관 강의실에서 ‘언택트 구민강사양성과정’3차시 온라인 수업이 열렸다. 김성학 강사가 ‘비대면 교육 콘텐츠 개발’을 주제로 강의 내용 파워포인트(PPT)와 동영상 제작, 자료화면 공유 등의 방법을 설명했다. 용산구 제공

조씨는 지난해 상반기 ‘나의 정원 만나기’ 온라인 강의를 열었다. 정원 이야기를 그림책과 연계하는 힐링 프로그램이었다. 그림책을 읽고 정원 사진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자신의 정원을 디자인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정원 교육은 야외에서 직접 해야 하는데, 온라인 교육이 잘 될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서로서로학교 수업을 준비하면서 동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남산, 해방촌 등을 다니며 동네 화단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는 “(서로서로학교가) 편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고, 쉽게 나누며 참여할 수 있게 문턱이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민들이 정원사가 되어 동네 화단을 예쁘게 꾸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고 했다.

김은경씨는 서로서로학교 강사를 “나누고 배우며 오가는 정이 쌓이는 ‘공동체’”로 비유했다. 피아노 전공자인 그는 아이들이 자란 뒤, 2012년부터 3년 동안 복지관에서 예술 강사로 활동했다. 2016년 용산구로 이사한 뒤 평생학습관의 여러 프로그램을 들었다. 서로서로학교도 알게 돼 구민강사양성과정을 듣고 우쿨렐레 강좌를 열었다. 강의가 끝난 뒤 수강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지역에서 공연하고 모임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보람도 느꼈다.

한동안 그는 다시 예술 강사 활동을 하고 용산구 평생학습 구민홍보단 ‘평생온’에 참여했다. 지난해엔 서로서로학교 온라인 강좌를 위해 칼림바라는 새 악기를 동네배움터에서 배워 자격증을 땄다. 구민강사양성과정도 한 번 더 들으며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다. 그는 “(칼림바가) 남녀노소 누구든 배우기 쉽고 영롱한 음색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며 “코로나 시기 온라인 수업에 딱 맞아 올해 상반기 강좌로 도전해볼 계획이다” 라고 했다.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서로서로 학교에 참여하면서 그에겐 이웃과의 네트워크가 생겼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동아리를 같이 하는 이웃도 늘었다. “서로 재능을 나눌 수 있어 좋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이웃에게 배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더 많은 이웃이 서로서로학교에 함께하도록 홍보가 잘되면 좋겠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김씨는 “주위에 재능 있는 주민이 많은데 이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나올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한다”며 “구민강사양성과정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차시만이라도 경험해볼 수 있게 개방하면 좋겠다”고 했다. 온라인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지원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조씨는 “구민강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음향, 조명 등의 시설을 갖춘 스튜디오가 있으면 훨씬 퀄리티 있는 온라인 강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강사료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회차당 자원봉사활동비 1만원을 받지만, 강의 준비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어려움이 없지 않다. 용산구는 이런 의견을 반영해 우수구민강사를 동네배움터나 평생학습 프로그램 강사로 연계하고 있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일자리를 연계하는 강사 지원사업을 한다. 평생학습기관에서 강사 양성과정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한 구민에게 강사활동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지원 자격을 갖춘 주민들이 일정 수 이상의 단체나 팀을 구성해 신청하면 교재비와 홍보비 등을 지원한다.

주민 일대일 맞춤 강의 제안도 있었다. “홀몸 어르신, 취약계층 아이들 등 소외 이웃을 찾아가는 강좌도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씨와 김씨가 입 모아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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