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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의 ‘내면 힘’ 키울 방법 찾아줘요”

전국 최초 미혼모자가족 사례분석보고서 ‘비빌언덕’ 낸 이현주 아름뜰 원장

등록 : 2022-04-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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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자가족 공동생활시설 아름뜰은 지난 2월 미혼모자 35가족을 대상으로 지원 내용, 만족도, 변화 정도 등을 분석한 사례분석보고서 ‘비빌언덕’을 펴냈다. 이현주 아름뜰 원장.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984년부터 38년 사회복지시설 근무

문제 해결 자료 찾다가 보고서 만들어

지적장애 등 어려운 미혼모 입소 늘어

“60년 전 만든 법 상황 맞게 고쳐야”

“요즘에는 심리나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시설에 오죠. 그러다 보면 숙제가 많아져요. 그래서 도움이 될 자료를 찾게 되는데 제대로 정리된 게 없습니다.”

이현주(61) 아름뜰 원장은 지난 2월 전국 미혼모자 공동생활지원시설 최초로 미혼모자가족 사례분석보고서 ‘비빌언덕’을 냈다. 2017년 7월 이후 아름뜰에 입소해 2020년 12월 퇴소한 미혼모자 35가족을 대상으로 지원 내용, 만족도, 변화 정도 등을 분석했다. 이 원장은 7일 “지금까지 미혼모자가족의 삶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객관적 기준으로 분석해본 적은 없었다”며 “평소 현장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어 아쉬웠는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점검도 할 겸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현주 아름뜰 원장(가운데)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아름뜰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미혼모자 공동생활지원시설이다. 2006년 12월 미혼모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는 기본생활지원형 미혼모자시설에서 2015년 7월부터 미혼모자가족의 자립을 돕는 공동생활지원형 미혼모자시설로 바뀌었다. 아름뜰은 3살 미만의 영유아를 양육하는 미혼모에게 일정 기간 숙식과 직업교육, 양육교육, 가사교육, 교양교육, 상담 등 다양한 자립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이 원장은 1984년 사회복지기관 홀트아동복지회에 들어와 38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7년을 근무한 뒤 2014년 1월부터 아름뜰 원장을 맡았다.

“빚을 지고 아이와 아름뜰에 와서 생활하다 빚 다 갚고 퇴소한 뒤 잘 사는 엄마들 보면 제일 기쁘죠.” 이 원장은 생각지도 않게 임신해 부모한테도 말 못한 채 아름뜰에 들어온 미혼모가 직업교육을 받아 취업해 아이를 키우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원장은 “하지만 모든 미혼모가 만족스럽게 자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몇 명이라도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퇴소 뒤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엄마가 자립해서 잘 살아야겠지만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냐도 중요하죠.” 이 원장이 제일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어린 시절 돌봄과 애정 결핍이 너무 크거나 회복되기 어려운 큰 마음의 상처가 있는 미혼모들은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미혼모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단단해져야 해요. 그래서 엄마로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원장은 미혼모들이 내면의 힘을 키우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한다. “여기 온 사람들이 대접받는다고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내면의 힘도 커집니다.” 이를 위해 이 원장은 하나를 하더라도 되도록 ‘좋은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좋은 먹거리를 먹고 좋은 공연도 보러 가고 여행을 가면 가장 좋은 호텔에서 지내요.” 이 원장은 “엄마가 좋은 경험을 하면 일상적인 삶의 기준이 높아질 수 있다”며 “삶이 힘들 때 ‘나 거기 좋은 데 가봤다’는 게 위로가 될 수도 있어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미혼모자가족 사례분석보고서 ‘비빌언덕’.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아름뜰은 미혼모가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35만원씩 지원한다. 아름뜰에서 생활하는 동안 500만원 이상 저축한 사람이 전체 37%가량 되고, 이 중 3천만원을 저축한 사람도 있다. 아름뜰은 올해부터 지원금액을 더 늘릴 계획이다. 이 원장은 “아름뜰에서는 모든 게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다”며 “퇴소 뒤 자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엄마이길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회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이 원장은 요즘은 갈수록 자립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사람이 시설에 온다고 했다. “지적장애가 있거나 무기력증,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요.” 미혼모들이 아름뜰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2년인데 1년 더 연장하면 3년 동안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립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시설을 나가면 살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이곳저곳 여러 시설을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시설에 머물고 싶은 미혼모는 더 머물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미혼모를 돌볼 수 있는 전문 인력도 필요해요.” 이 원장은 “현행법은 60년 전에 만든 것이라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이제는 법과 제도가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입소 당시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한 모습으로 퇴소한 미혼모자가족을 생각하면 고맙고 뿌듯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미혼모를 생각하면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이 원장은 “미혼모가 지역사회에서 아이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준비를 잘 시키는 것이 한결같은 목표”라며 “이들이 세상에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바랐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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