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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직 12년’, 구민이 준 ‘행운’에 ‘작은 역사’로 보답하다

등록 : 2022-05-1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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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임 제한’ 퇴임 예정 구청장 7명이 꼽은 백역사·흑역사

지역 개발, 인프라 확충, 동 복지 허브, 보육 혁신 등 ‘성과’

“정비 사업 갈등 조정 과정에서 치른 ‘곤혹’ 가장 힘들어”

서울 자치구의 구청장 가운데 세 번 연달아 뽑힌 7명이 6월30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서울&>은 이들 구청장을 대상으로 소회와 구정 경험, 지방자치의 현실과 과제를 묻는 설문조사를 지난 4월 진행했다.

“행운이었습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12년 동안 제 모든 것을 충분히 쏟아부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심부름을 열심히 하리라 믿고 세 번이나 뽑아준 구민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라며 “큰 사건·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게 더 큰 행운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선 2기 임기를 합쳐 16년 구청장직을 수행한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주민들의 과분한 사랑으로 오랫동안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었던 점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곡지구 개발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챙긴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지역의 새 미래를 만드는 일의 중심에 있었던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노 구청장은 강서에서 구청장 네 번, 국회의원 한 번을 한 보기 드문 경력을 갖고 있다.

민선 2기 서울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 뒤 도중 하차해 10년의 공백기를 딛고 돌아와 3연임을 한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다시 뛸 수 있도록 제 손을 잡아주신 구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구민들이 기회를 줘 제 손으로 나무를 심고 키워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고 뿌듯해했다.


행운의 시간 속에서 이들은 작은 역사를 만들었다. 재임 중 이룬 대표적인 성과에 대한 질문에 지역 개발과 인프라 확충, 복지와 교육·보육 분야 혁신 등을 꼽았다. 전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대중음악 전문공연장 ‘서울아레나’ 건립 절차를 10년 만에 마무리한 이동진도봉구청장은 “우여곡절 끝에 6월 착공을 앞두고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구로구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거듭났다”고 했다. 이 구청장의 임기 동안 구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4배 늘리고 공적 돌봄센터 59곳을 갖춰 아이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은 ‘동 복지 허브화’ 사업을 꼽았다. 이 사업은 동주민센터를 복지 허브로 바꿔 복지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와 보건복지부의 읍면동 복지 허브화 사업의 모태가 됐다. 그는 “지방정부 행정이 중앙정부 행정을 이끈 사례”라고 평가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청량리 재개발과 정비사업 본격화를 꼽았다. 그는 “개발이 마무리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청량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마곡지구의 성공적인 개발이다. 그는 “특히 요트 정박장 계획을 바꿔 만든 서울식물원은 싱가포르 보타닉가든 못지않은 세계적 명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북한산의 천혜 자원과 역사문화 유적을 활용해 문화관광 인프라를 확충했다. 그는 “오랜 기간 조금씩 변화를 거듭해 강북구가 이제는 괄목상대할만큼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역의 미래를 역사문화에서 찾고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는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 지정은 지역특화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자부했다.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백역사가 있으면 흑역사도 있는 법. 재개발 사업 등 이해당사자들 간의 갈등 때문에 구청 앞에 현수막이 걸리고 농성이 이어진 곤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경우가 적잖았다. 구청장들이 나서서 설득하는 데 힘을 쏟지만, 입장이 좁혀지지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창동역 노점상 정비과정에서 주민과 노점 간의 심각한 갈등이 1년간 이어지면서 평생 들을 비난을 다 받았다”고 했다.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큰 사업이나 못다 한 과제엔 생활환경 저해 시설 이전이 많이 꼽혔다. 강서구는 지하철 5호선 차량기지와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9개가 밀집한 방화대교 남단 일대를 공원화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건폐장과 지하철 차량기지 이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노현송 구청장은 “국공유지 부분을 생태·체육공원으로 조성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다음 단계를 임기 내 마무리 짓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연탄공장·차량기지 이전 미완, 노인대학 설립 무산 등 아쉬워”

생활환경 저해 시설 이전이나 개선은

자치구나 주민 의지만으로는 힘들어

지방자치 위한 1순위 과제 ‘재정분권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 연탄공장 이전은 2013년 서울시 도시건축 공동위원회에서 계획안이 통과된 뒤 이전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가 이어져왔지만, 경기도 이전 희망부지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아직 옮겨갈 곳을 찾지 못하고있다. 유덕열 구청장은 “자치구와 주민의 의지만으로 처리하기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구로구의 구로차량기지 이전은 사업비 증가로 경인선 지하화 사업 추진 여부도 결정되지 못했다. 이성 구청장은 “타당성 재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경인선 지하화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기에 반드시 추진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상습 혼잡 구역에 지하 공간을 만들어 교통문제를 풀고 도서관 등 문화시설을 마련해 주민 편의를 넓히기 위해 홍제동 지하 개발 프로젝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토지 확보 등의 문제로 진척되지 못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주민들을 위해 다음 구청장이 꼭 마무리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말했다. 용산구는 노인대학을 설립하고자 예산을 편성해 구의회에 제출했는데 부결되어 무산됐다. 성장현 구청장은 “초고령화 시대 어르신들을 위한 평생학습 공간이 필요해 꼭 만들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강북구는 50년 다 된 구청 청사를 새로 지어 행정 기능을 통합하고 주민 복합문화 공간을 갖추는 계획을 2018년 세웠다. 서울시 도시계획 절차를 밟는 데 4년 넘게 걸려, 지난 4월 마침내 확정이 났다. 박겸수 구청장은 “만시지탄이지만 후임 구청장이 신청사 건립을 추진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들어 다행이다”라고 했다.

박 구청장은 고독사 발생 건수가 줄지 않는 것도 안타까운 일로 꼽았다. “전화 안부확인 등 돌봄체계를 강화해도 늘고 있어 난감하고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했다. 그는 “고독사 문제는 개인보다 사회적 책임이 크기에 문제를 풀기 위한 더 많은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구정 일선에서 느꼈던 지방자치 한계 사례도 들었다. 서대문구 홍은사거리에 주민을 위한 유턴 차로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려 3년9개월이 걸렸다.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국을 신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진통과 협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문석진 구청장은 “지역 현장의 필요성을 알기 어려운 중앙정부에 모든 권한이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다”라고 했다.

강북구민 3명 중 1명은 북한산 조망권 보장을 위한 고도제한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증축과 개축을 못하면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박겸수 구청장은 “자치구에 권한이 없다보니, 재산세 경감 등의 보상 대안을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만 내오고 있다”고 했다.

재정 분야에서는 보조금 사업의 지방비 부담 의무화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참여사업 등의 자체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줄어드는 문제가 꼽혔다. 올해 서울시가 자치구주민참여 사업 예산을 대폭 삭감해 동대문구의 경우 자체 부담해야 할 예산이 33억4천만원이 더 늘었다. 유덕열 구청장은 “교육을 포함한 마을공동체 등의 관련 사업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위한 1순위 과제로 재정분권이 가장 많이 꼽혔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재정분권은 자치분권 실현을 위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추가 입법을 통해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 대 4까지 조정함으로써 지방정부의 자체 재원을 확대할 것을 강조했다. 중앙과 지방 정부 간의 소통, 지방의회와 정부 간의 소통을 꼽은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방의회의 협력 없이는 지방정부의 중요 정책들이 원활히 추진되기 어렵다”며 “구정 동반자로서 정당 논리를 떠나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지방의 재원 확대를 위해 지방소비세, 지방소득세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이 구청장은 지방의 재정 여건이 고려된 국·시비보조율 기준 개선과 국고보조금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보조금’ 제도의 확대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지자체 재량권을 확대하면 오히려 예산 절감과 사업의 달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광역과 기초 지자체 간의 수평적, 협력적 관계 전환을 강조한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올해 새로운 지방자치법이 시행된 만큼 광역지방정부가 기초지방정부에 대해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과도한 간섭과 관행적 통제를 제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개헌의 불씨를 살려 국가운영의 기본방향이 ‘지방분권’에 있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구청장은 “자치 입법권, 조직권, 재정권을 토대로 중앙과 지방정부가 수평적인 관계에서 소통을 이뤄가야 지속가능한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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