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거둬 가는 재활용품은 과연 어디로 가는지 꼼꼼히 따져 보자. 강북구로 이사를 오면서 ‘공공박스’ 기부를 알게 된 이기은씨가 수유동에 있는 ‘함께웃는가게’에서 옷과 신발 등 자신이 기부할 물품을 들고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지난 4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강북구 수유동으로 이사를 온 이기은(59)씨는 이사 직후 ‘○○(공공)박스’ 누리집(//oobox.kr)에 접속했다. 이사 전 옷장, 찬장, 창고를 정리한 뒤 쏟아져 나온 가방, 옷, 그릇 등을 기증하기 위해서다.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쓸 일은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다. 누리집을 통해 이씨가 기부를 신청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른 기부 사이트에 견줘 메뉴가 간단해 첫 화면에서 바로 기부 신청을 클릭할 수 있었다. “이름, 연락처, 주소, 기부물품, 희망 방문 날짜를 입력하고 신청하기를 누르니 접수가 됐어요. 정말 간단하고 편리했어요.”
이씨가 굳이 ○○박스에 기부한 것은 오래전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그는 2년 전 지역 음악회에 갔다가 ○○박스를 알게 됐다. ○○박스는 강북구의 재사용가게들이 홍보와 기부 플랫폼으로 함께 만든 공동 브랜드이자 서비스이다.
그날 음악회에서 이씨는 ○○박스 홍보물을 받고 기부를 약속하는 서약 이벤트에 참여했다. “기부한다는 서명을 하고 나니 꼭 실천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더라고요. 게다가 기부를 하면 우리 지역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는 게 끌렸어요. 이사 갈 때 기부할 물품이 생기면 ○○박스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에 홍보물을 서랍에 고이 넣어 뒀죠.”
기부 희망 일정에 맞춰 최미경 함께웃는가게 대표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 기부 물품을 전하면서 최대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재사용가게가 집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이씨는 함께웃는가게의 단골이 됐다. 5월12일에는 가게에서 양말 4켤레, 작은손주용 딸랑이 1개, 큰손주용 동화책 1권, 티스푼 1세트를 샀다. 금세 장바구니가 가득하다. “이 많은 게 8000원이야, 8000원. 어디서 이렇게 사?”
이씨는 새것보다 재사용가게의 물건에 남다른 애착이 간다고 했다. 누군가의 숨결과 애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재사용가게에 들르곤 한다.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 물품들을 보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단다. 기부를 하면 누군가에게 전해져 의미 있게 쓰일 거라는 생각에 고맙고 따뜻한 느낌도 받는다고 했다. “흔히 손때가 묻어서, 추억이 담겨서, 언젠가 쓸지 몰라서 내놓지 못하죠. 하지만 흘려보내야 홀가분해져요.”
이씨는 ○○박스를 아는 이웃들이 아직 많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했다. “언론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박스 같은 기부 서비스와 재사용가게를 널리 알려 주면 좋겠어요. 나누면 즐겁고 행복하잖아요.”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