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풍성하고 활기찬 베를린 재래시장

등록 : 2016-06-16 14:37 수정 : 2016-06-17 10:18

크게 작게

베를린의 재래시장인 마이바흐 우퍼. 일주일의 두번 여는 이 시장은 신선한 육류와 제철 과일이 풍성해 늘 계절 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오늘은 재래시장이 서는 날이다. 베를린에는 재래시장이 꽤 북적인다. 생선, 치즈, 햄 등을 파는 상설 재래시장도 있고 정기적으로 서는 청과물 시장도 있다. 오늘 갈 곳은 일주일에 두번 서는 터키 시장 마이바흐 우퍼다.

섭씨 28도, 때 이른 무더위에 반바지에 슬리퍼 그리고 모자까지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한 30분 유유자적 걸어 볼 셈이다. 모퉁이를 돌아 시장 어귀에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음악이 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제7곡 ‘리모주의 시장’이다. 강가를 따라 펼쳐진 가판대의 하얀 지붕들과 목청껏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노랫소리, 하얀 앞치마 밑으로 잰걸음을 놓는 터키 아주머니들의 뒷모습, 이 모든 것들의 어울림이 그 경쾌하면서도 되알진 선율과 꼭 닮았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늘어선 이 시장을 보는 방법은 어느 쪽이든 한쪽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늘은 강가 맞은편으로 들어섰으니 먼저 ‘고깃간’에 들렀다. 내가 이곳을 굳이 고깃간이라고 하고 싶은 이유는 ‘정육점’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아는 정육점 모습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고기의 종류는 딱 두 가지, 쇠고기와 양고기뿐이다. 439g짜리 깔끔한 포장육 따위는 없다. 무조건 ㎏ 단위로 판다. 그게 다가 아니다. 1㎏을 달라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 “1㎏ 5유로, 3㎏ 10유로, 3㎏ 오케이?”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무게 나가는 과일은 그만두고 채소 몇 단 사기도 전에 집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분홍빛 형광등 하나 없이 살점만 가득한 이 으스스한 가게에는 항상 문 밖까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고기를 사기 위해서이다. 먼 곳에서 날아왔다는 1등급 3플러스 프리미엄 스테이크 감을 사러 온 사람은 없다. 단지 베를린 어딘가에서 오늘 공급된 신선한 고기를 사러 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1등급 스테이크용 고기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고기들은 구매자의 오늘 식단과 보는 눈에 달려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기를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중고차를 고르듯 진지하다. 고기에는 정말 문외한인 나는 어쨌든 오늘도 무사히 3㎏의 유혹을 뿌리치고 장조림 감으로 1㎏를 사서 만족스레 가게를 나왔다.

시장은 때때로 그 어떤 달력보다도 무섭게 나에게 ‘시간’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망고, 오렌지, 아보카도 들을 살 계획이었는데 막상 와 보니 그사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우리 막내가 좋아하는 에스파냐산 오렌지는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작고 푸릇푸릇했던 망고는 노랗게 살이 쪄 알아보기도 어렵고, 아보카도는 값이 두배로 올랐다. 그 대신 잘 안 보이던 멜론이며 수박이 눈에 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발품을 더 팔아 가는 계절의 끄트머리라도 붙들어 볼까, 아니면 일찌감치 새것들에게 눈길을 돌려 볼까?

그러는 사이에 배낭은 점점 생각지도 못한 채소들로 채워지고 있다. 마늘잎, 민트, 루꼴라, 가볍고도 여린 것들만 골라 담고 있다. 아무래도 사려던 과일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모양이다. 그래,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좀 더 찾아보기로 하자.

글·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