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장마를 잊으니 여름도 잊혔다

등록 : 2016-08-04 14:08 수정 : 2016-08-0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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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닷가에서 물놀이에 열중한 쌍둥이 아들.

자전거 하이킹을 나갔던 막내가 흙탕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나, 비 오니?”

“얼마나 많이 왔는데. 엄마는 몰랐어?”

그제야 창문 밖을 보니 지나간 비바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작은 웅덩이가 파였고, 미처 물방울을 털어내지 못한 나뭇가지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며칠째 25도를 웃돌며 제법 여름 흉내를 내던 날씨가 뚝뚝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함께 20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고등학생 무렵, 어느 해 장맛비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을 모두 앗아갔다. 무언가에 놀란 듯한 엄마의 비명을 듣고 허둥지둥 층계를 내려갔을 때, 지하는 이미 빗물에 잠겨 있었다. 여기저기로 스며든 빗물이 바닥에 깔린 장판 위로 발목이 잠기고도 남을 만큼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의 서재 한구석에 켜켜이 누워 있던 사진첩들 속에서는 오랜 세월에 누렇게 변해가던 흑백 사진들이 하나둘 빗물에 젖어가고 있었다. 양복과 지팡이가 멋지게 어울리던 할아버지 모습이 담긴 사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예뻤던 교복 입은 엄마의 사진도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흙탕물이 번진 뒤였다.

그때부터 여름만 되면 지하실은 물에 잠겼다. 장마철이면 온 가족이 창문 틈마다 걸레를 끼우고 바닥에는 못쓰게 된 이불을 깔아 빗물과 전투를 벌였다. 서너 장의 이불이 흥건히 젖으면 그 이불들을 동생들과 내가 걷어 세탁기에 넣었다. 탈수가 끝난 이불은 엄마가 다시 지하실 바닥에 깔아놓았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내리는 비에 온 가족이 번갈아가며 이불을 걷어내느라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느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쓴 막냇동생이 어느 날은 이렇게 말했다.

“기다려 누나. 내가 크면 여기를 아예 수영장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


시간은 쏜살같다. 그로부터 20년, 막내는 정말 커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비록 수영장은 만들지 못했지만 이제는 엄마도 동생들도 장맛비에 밤을 지새우지는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이곳 독일에서 오랜 시간 장마를 잊고 살고 있다. 가족 중에서도 유별나게 여름을 싫어했던 나는 소원대로 한여름에도 스웨터와 목도리를 옷장에 넣어 두지 못하고 20년을 살았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장마를 잊고 살다 보니 여름을 잊고 살았다.

장맛비가 걷히면 우렁찬 매미 소리에 아버지의 서재가 말라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먹던 수박이며 참외는 꿀맛이었다. 작은 게들과 조개들이 놀던 해변이며 포근한 바다, 할머니 댁 평상 위 선풍기와 낮잠, 그리고 잠자리 또 방아깨비…. 내가 여름이라 일렀던 그 모든 것들이 장마와 무더위를 견뎌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와 날씨 변화가 심해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20년이 흐른 뒤에 우리는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게 될 그 무엇인가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옷걸이에 걸린 스웨터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이제 창문을 닫아야겠다. 글ㆍ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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