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낯선 영역 ‘장애와 예술’에 ‘도전’이라는 화두 던지다

⑨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부문의 ‘창작과정공유’가 던진 문제 제기

등록 : 2021-12-0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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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5일 강보름 연출의 <소극장판-타지> 리허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관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비장애인 강현우 배우(왼쪽부터), 청각장애를 지닌 안정우 배우, 비장애인 고애리 배우, 저시력 시각장애를 지닌 이성수 배우

출발 때 ‘연말 쇼케이스 공연’ 밝혔는데

‘쇼케이스’ 아닌 ‘창작과정공유’로 진행

‘왜일까?’ 궁금증 안고 본 공연 낯설어

비장애와 시각·청각·뇌병변 장애 배우

한데 어울린 모습이 드물기 때문인 듯

낯섦 속에서 건진 속‘ 도’와 ‘도전’ 두 단어

모든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낮은 속도’


다름 바탕으로 새로움 추구하는 ‘도전’

연극계에 던진 문제 제기로 오래 남을 듯

‘창작공감 연출 (부문의) 창작과정공유.’

지난 11월19일부터 오는 12월5일까지 매주 금·토·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극들에 붙여진 이름이다.

‘창작공감’은 올해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에서 새롭게 시작한 창작극 개발 프로그램이다. 작가와 연출 부문으로 진행되는데, 연출 부문에서는 ‘장애와 예술’이라는 공통 주제 아래 강보름·김미란·이진엽 연출이 선정됐다. 세 사람은 지난 4월부터 국립극단 스태프, 그리고 드라마투르그인 전강희 운영위원 등과 함께 매달 1~2차례 리서치와 워크숍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런데 뒤에 붙은 ‘창작과정공유’라는 부분이 낯설다. 국립극단은 지난 3월 말 세 명의 연출가를 선정하면서 “연말 ‘쇼케이스’를 통해 각 작품의 얼개에 살을 붙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국립극단 제작 공연으로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쇼케이스’로 예정됐던 무대가 ‘창작과정공유’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왜일까?

궁금증을 안고 지난 11월25일 강보름 연출의 <소극장판-타지> 리허설을 관람했다. 이번 ‘창작과정공유’에서는 이진엽 연출의 <커뮤니티 대소동>(11월19~21일)과 강 연출의 <소극장판-타지>(11월26~28일), 그리고 김미란 연출의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엘사 아님)>(12월3~5일)이 차례로 선보이는 중이다.

<소극장판-타지> 리허설은 기자가 기존에 봐왔던 연극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출연 배우 5명의 구성이 다양했다. 국립극단 시즌단원인 비장애 배우(강현우·고애리)와 저시력 시각장애(이성수)·청각장애(안정우)·뇌병변장애(김지우)를 가진 배우들이 한 무대에 섰다.

장애연극에서도 다른 성격의 장애를 가진 배우가 한 무대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비장애인이나 여러 유형의 장애인들이 무대에서 소통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강 연출의 <소극장판-타지>에서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관객으로서도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 28일 공연 때는 전맹인 관객을 인도하는 안내견이 입장했다고 한다. 당연히 고려해야 할 ‘소통의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난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배우와 관객이 잘 소통하면서도 연극의 ‘정체성과 작품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낯선 지역’을 뜻하는 <타지>라는 제목처럼 공연은 이렇게 모두에게 ‘낯선 환경’을 만들면서 출발한다.

공연장도 치밀하게 준비됐다. 소극장 판의 입구에서 볼 때, 3시 방향과 9시 방향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흐르게 돼 있었다. 또 공연장 네 곳 모서리 중 두 곳에는 각각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이동식 경사로가 놓였다. 공연을 시작하면서 시각장애 배우가 출연해 점자블록을 바닥에 까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청각장애를 지닌 안정우 배우의 움직임에 맞춰 관객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공연은 각 배우가 느끼는 ‘미스핏’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듣고 보는 동안 어느새 공연시간 50분이 흘러갔다.

리허설을 보고 나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출연자들이 힘을 합쳐 한 편의 극을 완성했지만, ‘화학적 결합’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한 느낌도 살짝 받았다. 그것이 ‘쇼케이스’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창작과정공유’라는 단어를 쓴 이유였을까? 그러나 강보름 연출과 전강희 운영위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강 연출은 ‘속도’라는 주제로 ‘창작과정공유’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강 연출은 4~7월에 장애와 연극이라는 주제로 리서치한 뒤 8월부터 배우들을 모아 워크숍을 했다. 그 뒤 10월까지는 강 연출을 비롯해 스태프와 배우들이 서로를 알아나가는 시간이었다. 2018~2020년 장애 문제를 다룬 ‘제로셋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던 강 연출은 <소극장판-타지>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 “함께 무대에 서왔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공연하게 돼서 배우들이 굉장히 낯설었을 것 같다”며 “자기 스스로 ‘나는 왜 연극을 해야 하는지, 이 무대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서야 하지’ 등의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이라고 했다.

강 연출은 이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처음 만나 공연하게 될 때 조금 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속도로 진행해야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 없이 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연 도중 배우들과 관객들이 극장 곳곳에 편하게 기대앉거나 누워 있다.

전강희 운영위원은 ‘도전’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전 위원은 “올해 창작공감 연출 부문은 ‘극장의 차원에서 보자면, 접근성과 같이 지금까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드러나게 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안 만들어지면 문제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장애인 배우들이 국립극단 무대에 섬으로써 국립극단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경험하게 했다”는 것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과정은 매 순간이 성공을 낙관하기 어려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런 도전이 있기 때문에 변화와 발전이 뒤따를 수 있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들에 ‘쇼케이스’라고 이름 붙이지 않은 것은 결국 이 ‘속도’와 ‘도전’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두 단어는 세 연출가가 여전히 ‘새로운 목표로 향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에 있는 연극을, 결과를 강조하는 ‘쇼케이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과정’은 그러므로 ‘미흡함이 아니라 계속될 변화’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중간 과정 발표를 마친 세 연출가의 작품은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본 무대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강 연출과 전 위원은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재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예상했다. 전 위원은 무엇보다 ‘창작과정공유’를 통해 다양한 성격의 배우들이 함께 무대 경험을 나눴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점으로 꼽았다. “이렇게 무대에 미리 서 봄으로써 자신들의 이야기가 관객과 충분히 소통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던 ‘창작과정공유’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큰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김지우 배우가 무대 가운데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연기하고 있다.

강 연출도 “본 공연에서는 ‘창작과정공유’ 때의 작품과는 구성이 많이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며 “그런 변화의 재미를 관객들도 같이 느껴볼 수 있는 무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내년에 선보일 본 공연은 어떤 모습일까? ‘창작과정공유’ 시점까지 실험했던 것들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공연이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계속 선보이는 공연이 될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올해 창작공감의 세 연출가가 ‘속도’와 ‘도전’이라는 큰 화두를 ‘장애와 예술’이라는 주제에 던졌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끝>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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