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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 서울시 민생대책팀장이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뒤 법정이자를 뛰어넘는 고금리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한 시민과 상담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8096명. 1731억 원. 주빌리은행이 서울시와 성남시, 은평구, 서대문구, 강서구, 구로구 등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진행한 ‘빚 탕감’ 프로젝트의 결과다. 보통 금융기관들은 장기연체 채권을 2차 채권 시장에 헐값에 팔아 부실을 줄인다. 이 채권의 고객은 대부업체 등이다. 1000만 원 상당의 채권을 100만 원에 사서 500만 원만 받아내도 5배의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수익을 노리는 영세한 대부업체들은 부실 채권을 사들인 뒤 심하게 빚 독촉에 나서기 때문에 서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주빌리은행은 채권을 사들인 뒤 소각해 빚에 허덕이는 서민들을 구제한다.
광진구는 대부업체 설득해 직접 소각하게 해
주빌리은행은 지난해 8월27일 시민단체와 지방정부가 손을 잡고 출범시켰다. 명칭은 은행이지만 정확하게는 대부업체다. 부실 채권을 사들이려면 대부업 등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직접 채권 소각에 나서기도 한다. 대부업체를 설득해 자체적으로 부실 채권을 소각하게 한 광진구가 그런 경우다. 광진구가 소각한 채권은 3억1000만 원 상당이다. 지난 9월12일 광진구가 직접 관내 11개 대부업체를 설득했고, 이 가운데 3개 업체가 광진구의 설득을 따른 결과다. 현동수 광진구 지역경제팀장은 “내년에는 주빌리은행과 함께 빚 탕감 프로젝트를 실시해서, 더 많은 부실 채권을 소각할 계획”이라며 지역 주민의 빚 탕감을 위한 노력이 일회성 행사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주빌리은행 채권 소각 혜택을 받은 채무자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거가 불분명하고 신분 노출을 꺼리는 등 소재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빚 탕감 프로젝트로 소각한 채권 내용은 주빌리은행 누리집(www.jubileebank.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불법 대부업은 높은 이자율로 채무자를 사채의 함정에 가두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도 지자체가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건 이들이 잠적하면 채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을 마련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제도권 금융기관의 높은 장벽도 해결해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지방정부는 빚이 곧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주범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빚 탕감과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서울시는 13곳의 금융복지상담센터(표 참조)를 마련해 시민들의 채무 조정과 재무 상담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일자리 알선, 주택 마련 등의 복지 서비스를 연계한 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금융 피해에 대한 전문 상담과 구제를 진행하는 ‘불법 대부업 피해상담센터’ 한 곳도 운영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대부업체와 채무자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는 분쟁조정위원회도 2013년부터 운영 중이다. 조정위원회는 지난달까지 총 15억 원가량의 채무를 조정해 고금리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구제했다.
자치구도 적극적이다. 은평구는 지난 4월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은평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열었다. 은평구가 서울시와 별도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연 데에는 개인별 대응도 중요하지만, 지역 차원의 종합적 대응책을 마련하려면 지역 주민의 피해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대문구는 은평구와 달리 서민에게 더 가까이 접근해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서대문구는 지난 4월 50명을 선발해 금융상담사 양성 교육을 했고, 이 가운데 자격을 얻은 12명을 지난 8월부터 12개 동 주민센터에 배치했다. 이들은 동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민원인에게 금융구제 방안과 법적 절차 등을 상담해 주고, 직접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방문상담도 한다. 찾아가는 채무 상담은 자치단체가 파악할 수 없었던 지역의 사금융 현황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벌금·과태료도 서민 생계에 큰 부담
사채뿐만 아니라 벌금 문제도 서민의 가계에는 큰 부담이다. 벌금 미납으로 가장이 교도소에 갇히면 당장 한 가족의 삶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벌금이나 과태료를 내지 못해 노역장에 남겨진 사람이 지난해만 4만8000명에 달한다. 장발장은행(www.jeanvaljeanbank.com, 02-2273-9004)은 노역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을 돕는다. 8명의 대출심사위원의 대출 적격 여부를 심사를 통과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상환 의지를 확인하고, 소년소녀가장과 미성년자,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 차상위 계층을 중심으로 죄질도 고려해 대상자를 선발한다. 장발장은행은 지난달까지 총 25차례에 걸쳐 383명의 시민에게 7억3718만 원을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해 줬다. 대출 자금은 전액 후원금으로 마련된다. 지난달까지 3158명의 개인과 단체를 통해 총 6억865만 원의 후원금이 마련됐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