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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구로구보건소 1층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의료장비가 하나 있다. 성인 어른 눈높이 정도 되는 크기의 ‘희망터치 무인검진기’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등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장비다. 희망터치는 보건소를 오가는 주민들에게 말없이 조언한다. ‘마음건강, 들여다보실래요?’
전업주부 이영희(42·가명)씨는 지난 4월 희망터치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2010년 둘째 아이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에 전념한 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삶이 허망해지고 불안감이 갑자기 커졌다.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큰아이의 영향으로 이웃들과 시선을 마주치기도 어려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급기야는 자신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는 “죽고 싶다”는 말에 깜짝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씨는 큰아이 문제로 보건소를 찾았다가 희망터치로 마음을 검진한 결과 우울감과 스트레스, 자살 경향성 등이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 결과 내려진 판정은 ‘자살 고위험군’. 이씨를 상담한 구로구 마음건강증진센터의 심리상담사는 “우울증 증세가 심해 네 차례의 심리상담 뒤 본인이 스스로 정신과 전문의 치료를 선택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아동·청소년 상담도 병행했다.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다”라고 했다.
이씨의 삶에 변화의 계기가 된 구로구 희망터치는 2014년 7월 주민들과 처음 만났다. 2007~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급격하게 치솟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여러 노력 가운데 하나였다. 구로구는 2008년만 해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15.7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낮았지만, 2010년에는 31.9명으로 치솟으며 “서울에서 자살률이 두 번째로 높은 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구로구보건소 정신건강증진센터 김민욱 실장은 “가리봉동이나 구로동 등 저소득층이 밀집된 곳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구는 자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2년 ‘구로구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자살 예방 시스템 마련에 노력했다. 김 실장은 “보건소의 한정된 인력으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며 마음건강을 점검하려니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며 “무인검진기로 주민들이 편하게 검진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희망터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낙인이 두려워 주민 스스로 정신건강 관련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현실도 참작됐다.
1년여의 개발과 테스트 기간을 거쳐 만든 희망터치는 구 보건소에 있는 고정형 1대 외에도 이동형 2대까지 모두 3대를 운영하고 있다. 주민 이동이 많은 공간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스플레이 화면을 붙여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정보를 입력할 수 있도록 했다.
주민들이 아동, 청소년, 성인, 임신·출산 후 육아 스트레스, 어르신 등 생애주기별로 우울·스트레스·자살 경향성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현장에서 바로 출력해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결과 데이터는 구로구 정신건강증진센터로 넘어가서 ‘주의’나 ‘저·중·고위험군’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전업주부 이씨와 같은 고위험군은 곧바로 상담 대상으로 정해져 심리상담사의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 2014년 7월부터 지난 10월까지 2년여 동안 구로구 주민 2만1301명이 희망터치로 검진을 받았으며, 그중에서 1715명이 상담을 받았다. 아울러 지난해부터는 한 해에 6개 초·중·고교를 순회하는 ‘해피스쿨 사업’을 벌여 자살예방과 위험군 관리, 위기 개입 등의 3단계로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돕고 있다. 학생들 중에서 자살 위기에 있거나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는 학생은 심층 모니터링과 상담 진행은 물론, 심리검사비와 특수치료비 등의 용도로 10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한다. 지난 2년 동안 12개 초·중·고 학생 8991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지난해에만 125명의 학생이 심리상담을 받았다.
이 가운데 전업주부 이씨와 같은 고위험군은 곧바로 상담 대상으로 정해져 심리상담사의 상담과 치료를 받는다. 2014년 7월부터 지난 10월까지 2년여 동안 구로구 주민 2만1301명이 희망터치로 검진을 받았으며, 그중에서 1715명이 상담을 받았다. 아울러 지난해부터는 한 해에 6개 초·중·고교를 순회하는 ‘해피스쿨 사업’을 벌여 자살예방과 위험군 관리, 위기 개입 등의 3단계로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돕고 있다. 학생들 중에서 자살 위기에 있거나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는 학생은 심층 모니터링과 상담 진행은 물론, 심리검사비와 특수치료비 등의 용도로 10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한다. 지난 2년 동안 12개 초·중·고 학생 8991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지난해에만 125명의 학생이 심리상담을 받았다.
구로구보건소 정신건강증진센터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임수연(28)씨가 지난 6일 무인 검증기 ‘마음건강돋보기’를 시연하고 있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구는 이 밖에도 생명존중에 대한 사회적인식을 높이기 위해 9월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중심으로 ‘초롱불 걷기 행사’ 등 다양한 생명존중 캠페인과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구로경찰서와 협력해 1년에 두 차례 경찰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하고, 2013년부터 자살 시도 사건이 일어나면 현장에 상담심리사가 경찰과 함께 나간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구로구에서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는 놀랄 정도로 줄어들었다. 2010년 31.9명이었던 자살자가 2015년 21.2명으로 줄어들었다. 5년 사이에 삼분의 일이 줄었다. 그래서 지금은 서울 25개 자치구 중 자살률 24위다.
구로구보건소 김 실장은 “앞으로 다른 기관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고, 더 많은 구민이 자살 예방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며 “무엇보다 ‘마음도 검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