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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반장’ 늘어나니 활동 활발해져요”

사람&‘젊은 열정’으로 동네일 척척 해내는 서대문구 이서준·이미연 반장

등록 : 2024-08-15 15:01 수정 : 2024-08-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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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는 올해부터 반장 임명률을 높이고 세대교체를 진행해 반장 조직을 활성화하고 있다. 그 선봉에 있는 ‘젊은 반장’인 이미연 북가좌2동 반장(왼쪽)과 이서준 홍은2동 반장이 7월25일 청소를 한 뒤 빗자루를 들고 웃고 있다.

서대문구, 서울 첫 ‘반장 활성화 사업’
임명률 56%에서 88%로 크게 높여
반장 역할 강화하고 구정 참여 확대
“주민 돕는 뿌듯한 반장 되고 싶어요”

“이번에 반장을 활성화하면서, 젊은 반장으로 많이 바뀌어 동네 네트워크가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이서준 홍은2동 반장)

“그동안 우리 통에 반장 하려는 사람이 없어 반장이 2명뿐이었어요. 지금은 6명으로 늘어나 카톡방도 만들어 의사소통도 활발히 합니다. 반장이 늘어나니 덩달아 일도 늘었어요.”(이미연 북가좌2동 반장)

서대문구는 올해부터 구민 중심 행정 기반 구축을 위해 반장 조직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처음으로 ‘반장 활동 지원 및 활성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동안 56%에 그쳤던 반장 임명률을 올해 7월 88%로 대폭 끌어올렸다. 또한 서울 자치구 반장 중에서는 70대 이상 반장들이 건강 등을 이유로 활동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대문구는 젊은 반장들을 임명해 ‘세대교체’도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반장 사기를 높이기 위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올해부터 연 1회 건강검진비 10만원, 연 1회 통신비 5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는 이를 통해 구와 지역사회 현장이 더욱 친밀하게 소통하고, 복지 정책 등에서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7월25일 서대문구 홍은2동 주민센터에서 세대교체의 중심에 선 ‘젊은 반장’ 이서준(52) 홍은2동 반장과 이미연(46) 북가좌2동 반장을 만났다.

네트워크 회사에 다니는 이서준 반장은 지난해 1월부터 대를 이어 반장을 맡고 있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내 권유로 반장 공모에 응모했습니다. 장모님 활동 모습을 되돌아보면,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는 게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이 반장은 “처음에는 성가실 것 같고 회사 일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지금은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서준(왼쪽)·이미연 반장이 청소 뒤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넣고 있다.

이미연 반장은 가재울고 협동조합 매점에서 근무한다. 2019년 지인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반장이 됐지만, 이제는 어엿한 6년차 ‘젊은 베테랑 반장’이다. 통장이나 다른 반장과 함께 행사 돕기, 구 관련 홍보물 나눠주기, 세대 조사 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한다. “가구 수 조사 등을 할 때 거동이 힘든 나이 많은 반장이 주민을 직접 만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이웃 사정을 잘 아는 통장이나 반장이 알아서 기재하고 사인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규칙대로 합니다.” 이 반장은 “그러다 보니 소외계층 주민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게 된다”며 “이제 1인가구 노인이 혼자 돌아가시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나이 드신 분과 한 조로 일하면 몸이 안 좋다며 빠지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사이좋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또 반장이 구정에 참여할 기회를 넓히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반장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반장은 이웃돌봄반, 교육지킴이, 우리동네살피미, 주민제설단, 적극행정위원회,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구정평가단 등 구에서 운영하는 14개 사업에 참여한다. 하반기에는 2개 사업을 더해, 16개 사업에 반장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서준 반장은 겨울철 주민제설단, 교육지킴이, 공유주차활동가, 주민참여예산위원, 구정감시단 등으로 활동한다. “우리 동네는 언덕길이라 눈이 오면 위험해요. 제설 작업을 끝내고 이웃이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길을 다닐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 보람을 느낍니다.” 이 반장은 “나랏일 돌아가는 사정도 알게 되고, 내가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뭔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서준 반장은 반장을 맡고부터 동네와 이웃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더 커졌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왔는데, 어르신이 반지하에서 물을 퍼내고 있더라고요. 오다가다 뵙던 분이라 함께 물을 퍼냈어요.” 이 반장은 “반장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반장이 되고 나니 동네 사정을 눈여겨보게 되더라”며 웃었다. “주택가에 노후 담장이 아주 많아요. 장마철에 무너지면 사고 위험이 높지만, 경제적 능력이 안 돼 해결 못하는 경우가 꽤 있죠.” 이서준 반장은 “동 주민센터에 얘기해도 공무원이 이것저것 규정과 절차 등을 따지다보면 해결이 안 돼 무척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돈이 없어 못 사는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봉투 달라는 노인이 많아요. 사소한 것 같지만 수입이 없는 노인들은 그것마저도 사기가 아까워서 일반 비닐봉지에 쓰레기를 버려요.” 이미연 반장은 “부모를 돌보지 않고 왕래가 없어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못 받는 사각지대 노인이 있다”며 “노인들에게는 무료로 쓰레기봉투를 나눠 주면 쓰레기 무단 투기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동네 노인들이 집 앞에 나와 이웃과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게 사라졌어요. 골목길을 다녀도 인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삭막합니다.” 이미연 반장은 “나이 든 분들에게 마음이 많이 쓰인다”며 “노인 세대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을 만드는 게 작은 소망”이라고 했다.

“젊은 반장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굉장히 큽니다. 아무리 좋은 제안도 정책에 반영이 안 되면 소용없으니 결국 공무원들이 많이 도와줘야 합니다.” 이서준 반장은 “나로 인해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그걸 보고 누가 반만 따라 해줘도 자긍심이 생길 것 같다”며 “떳떳하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반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글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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