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왕산 산불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공동주택 밀집한 서울 산, 가연성 물질 많아 인명 피해 우려”
서울시, “인왕산 산불 후 예산 3배 투입, 관리 수준 높아져”

등록 : 2025-04-10 13:18 수정 : 2025-04-10 15:26

크게 작게

2023년 4월2일 오후 산불이 발생한 서울 종로구 인왕산에서 소방헬기가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이 새 수도 이름을 ‘한양’이 아닌 ‘한성’(漢城)이라 한 것은 행정·군사·정치의 중심지로서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길이 18㎞의 성곽에서 비롯됐다. 내사산 중 호랑이가 살았다는 인왕산(338m)은 백호(白虎)라 불리며 한성 방어의 핵심 요충지였다. 경복궁 서쪽에 인접한 인왕산은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한양도성과 사직단은 물론, 나라의 안녕을 빌던 국사당, 민간신앙의 성지 선바위, 서울시 기념물인 수성동·백운동 계곡,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청운공원, 선림사 터와 인왕사, 폐비의 절개를 담은 치마바위, 기차바위, 활터인 황학정, 선비들이 시를 읊던 탕춘대 등이 있다. 겸재 정선은 인왕산의 빼어난 자연 풍광을 ‘인왕제색도’(1751년, 국보 제216호)에 담았다.

그런 인왕산에 2년 전 큰 산불이 났다. 2023년 4월2일 낮 종로구 부암동 자하미술관 근처에서 시작된 산불이 인왕산 정상으로 닿았고 바람을 타고 반대편 서대문구 홍제동 쪽 산 중턱까지 번져나갔다. 산 아래에는 아파트 등 1만여 가구와 인근에는 주유소, 건너편엔 안산(무악산), 백련산이 있어 대형 재난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신속한 대처로 인명피해 없이 25시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 불로 축구장 8개(6만㎡) 넓이의 숲이 까맣게 타버렸다. 지금까지 남산에서 일어난 몇 건의 방화 또는 실화 기록만 있는 것으로 보아 인왕산 산불은 한양 천도 600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산불로 추정된다.

서울 도심은 내사산이 둘러싸고 있다. 각 산은 경복궁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위치한다. 내사산은 종로구의 북악산(북)과 낙산(동),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친 인왕산(서), 중구와 용산구에 걸친 목멱산(남)을 일컫는다. 외곽에는 외사산(外四山)이 있다. 은평·강북·성북구에 넓게 자리한 북한산(북), 관악·금천구에 걸친 관악산(남), 중랑·광진구에 걸친 용마산(동), 은평구에 닿은 덕양산(서)이 자리잡고 있다. 25개 구 중 영등포구만 유일하게 산이 없다.

최근 이른바 ‘숲세권’이라며 도심 속 자연에서 살고자 하는 주거 수요가 늘면서 산 아래마다 신축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서울처럼 산이 많고 산 바로 앞까지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과 생활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의 산불은 나무와 생태뿐만 아니라 건물과 차량, 주유소 등 가연성 물질을 통해 확산 속도가 빠르고 강해 인명피해가 커질 수 있기에 예방과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왕산 산불 뒤 서울의 산불 대책은 달라졌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인왕산 산불 직후 관계 기관과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종합적인 평가와 개선책을 논의했다. 산불 이전에 비해 3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서울 산불관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을 5개 권역으로 나눠 각각 공원 여가센터에 개인 진화 장비를 비축해 가까운 곳에서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또 산불 발생 위험지역 47곳을 지정해 특별 예찰 등 집중관리를 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울시 설명에 따르면 고압수관 장비보관함을 산 곳곳에 설치해 야간 진화도 가능하게 됐고 소방차가 분사하는 물이 고지대까지 도달하도록 했다. 또 둘레길 산책 인구가 폭증하자 산불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지하철, 옥외전광판, 관공서 엘리베이터 등 4천여 곳에 적극적인 캠페인 영상과 메시지도 내고 있다.

또 2018년부터 산불 용의자를 찾아내고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산불 주의 안내방송도 하는 태양광 블랙박스형 폐회로티브이(CCTV) 216대를 주요 산에 달았고 올해도 200대를 더 늘리는 중이다. 한국전력과 협약을 맺어 송전탑 시설에 산불감시 장비를 달아 신속 대응 체제를 갖췄고, 산속에 있는 절 등 위험지역은 친환경 산불지연제를 살포한다.

서울시의 드론 진화 훈련 모습. 서울시 119 특수구조단 제공

구청들, “봄가을 산불 대책본부 운영하고 기관 합동 진화 훈련도”

“도심형 산불 위험성 더 커져”
“서울 특성 맞는 계획 있어야”

영상으로 산불을 감지해 자동으로 드론이 발화지점으로 날아가 휴대폰으로 실시간 전송하고 진화도 하는 인공지능(AI) 소방시스템은 지난해 노원구와 구로구에 도입했고 올해는 관악구와 은평구에도 도입할 예정이다. 한편, 각 구는 밀집 주거지에 인접한 3~7개의 크고 작은 산을 포함하고 있어, 해마다 봄가을 산불방지대책본부를 꾸려 화기 및 인화·발화물질 소지를 단속하고, 영상·펼침막·포스터를 활용해 산불 예방 홍보는 물론 첨단 장비를 활용해 관할 소방서, 경찰서, 군부대, 보건소 등과 합동 진화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더욱 적합한 ‘서울형’ 산불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후변화로 도심 산불의 양상을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인구가 밀집해 있고 화재 위험물과 문화재가 가득한 서울 산불은 큰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는 탓이다.

김동현 교수는 서울 산불 대책에 대해 여러 가지 보완책을 주문했다. 그는 “서울 산에는 등산객이 많은데 자치구마다 둘레길과 샛길을 정비하고 있으나 아직도 좁고 경사가 가파른 등산로가 많아 사고 위험이 상존하고, 그렇다보니 산불이 나면 연기 속에 갇히거나 대피하다가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산 곳곳에 대피공간이 있어야 한다. 또 아파트나 주유소, 엘피지(LPG) 등 가스저장탱크 같은 위험 시설들이 산 바로 밑에 있는 곳은 위험지구로 설정해 산불이 넘어오면 자동으로 물 뿌리는 장치 같은 걸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소방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골목에 고속도로처럼 바닥에 ‘여긴 1t 가능, 여긴 2.5t 가능’ 식으로 표시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소방관들의 진입 판단이 쉬워지고 진입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소방차의 회전 공간을 만들어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이어 “산림청 대책은 많이 있지만 중요한 건 지역 특성을 고려한 대피를 포함한 맞춤형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어디가 위험하고, 불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세부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특성을 고려한 계획은 아직 요원하다. 정성철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예방연구실장은 “여력이 안 돼 아직 서울 지역만 따로 연구하지 못하고 있다. 인왕산 산불처럼 도심형 산불 위험이 점차 커지고 있어 그런 방향으로도 연구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치구 중 유일하게 노원구가 2020년 구 의회 주도로 ‘노원구 산림 인접지 화재관리 대책 수립’ 보고서를 낸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편, 산불 2년이 지났지만 산불 전과 같은 현장 복구는 갈 길이 멀다. 홍제동의 한 아파트 주민은 “산불 이후 입주민 대책회의를 열어 원상복구를 바라는 주민들의 의견을 내는 등 노력에도 불구하고 2년 전 불에 탄 곳이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산림청에서 실시한 ‘인왕산 산불 피해지 생태복원 타당성 평가 용역’ 결과에 따라 단계적으로 덩굴류 제거, 움싹 관리, 종자 파종 및 어린나무 식재로 자연식생 유입을 유도하고, 토사 유출 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는 주민 공청회와 환경단체, 전문가가 참여한 현장 점검도 마쳤고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복원 공사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