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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주민들 마음 하나 되어
‘쓰레기 테니스장’에 텃밭 일구고
컨테이너로 만든 마을상회에서
텃밭 작물, 기증품, 생필품 등 판매
올해는 비대면 ‘마을 택배’도 선보여
6년간 기금 1500만원 넘게 모아
장학금 지급하며 효도관광도 진행 주민 대상 총 400만원 공모전도 열어 다양한 목적별 소모임 활발히 전개 “이웃 위한 공동체 활동 멈출 수 없어”
6년간 기금 1500만원 넘게 모아
장학금 지급하며 효도관광도 진행 주민 대상 총 400만원 공모전도 열어 다양한 목적별 소모임 활발히 전개 “이웃 위한 공동체 활동 멈출 수 없어”
동작구 대방동 대방주공1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2018년 10월 마을 운동회날에 함께 먹을 김밥을 만들고 있다.
‘도시의 외딴섬’이라 불리는 동작구 유일의 영구임대단지 대방동 대방주공1단지 아파트에는 모두 925가구가 산다. 아파트촌 사이에 있는 영구임대아파트, 정부지원금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그곳에 있는 복지관은 어려운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오늘도 복지관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분들은 우리 주변의 너무나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다. 두 손 마주 잡고 평생을 함께하시는 102동 2층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시는 밝은 미소가 매력적인 105동 11층 아저씨, 홀로 아이를 키우며 아침 일찍 출근하기 바쁜 103동 5층 아주머니는 우리 대방동 영구임대단지 주민이다.
2013년 어느 날,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가 어렵게 생활하며 도움을 받기만 했는데, 마을과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날 이후 대방주공1단지에서는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지에서도 가장 외진 곳, 축대 밑에 자리하고 있어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수년째 방치돼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테니스장. 잡초가 무성하고, 쓰레기로 뒤덮여버린 공간을 활용해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마을 텃밭을 개간해 상추, 케일, 쑥갓, 고추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100여 평 부지, 처음부터 텃밭 재배가 쉽지는 않았다. 테니스장으로 조성된 모래땅인 탓에 물을 흠뻑 주어도 금세 작물이 말라버리기 일쑤였고, 모종을 심어도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 주민들은 힘을 합쳐 단지 내 수도관을 텃밭과 연결해 스프링클러를 설치했다. 매주 금요일 새벽 6시, 마을 일꾼들은 작물이 여무는 대로 수확해 천원, 이천원씩 받고 이웃에게 판다.
매대에 놓이는 족족 팔려나가니 마을 일꾼들도 덩달아 웃는다. 주민들은 단지 내 컨테이너를 설치해 영구임대단지 한가운데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아기자기하게 칠한 마을상회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은 주민들의 기증품과 도매로 구매한 생활용품, 마을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매일 지역 주민 두 명이 짝을 이뤄 요일마다 순번을 정해 자리를 지킨다. 이곳에서는 아이들 장난감을 팔고, 정장을 팔기도 했으며, 철마다 수확하는 작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난닝구 없슈?” 상회 문을 열며 불쑥 들어오는 질문에 “날도 더운데 여기 와서 앉았다 가”라고 답한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주민들 대화에는 103동 할아버지가 병원에 간 이야기, 105동 아이가 친구들과 싸운 이야기 등이 오간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살풍경한 아파트 단지가 주민들 대소사를 다 공유할 만큼 하나가 된 것은 ‘마을상회’ 덕분이다.
이렇게 6년간 모은 마을공동체 기금은 어느새 1500만원이 넘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과 함께 논의해 영구임대단지 내 거주하는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 동안 6명에게 장학금 300만원을 지급했고, 주민을 대상으로 총 400만원의 공모전을 진행했다.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못한 어르신에게 효도관광 보내드리기, 어려운 가정 아동에게 선물 전달하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마을상회 ‘반장’을 맡은 이복수 할머니가 지난해 제출한 사연이 선정됐다.
“걔 엄마가 식물인간이라고 들었어. 아빠는 엄마 돌보느라 일을 못하고, 애가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한테 ‘한 번만 태워달라’고 사정하는데 친구들이 안 태워주고 ‘쌩’ 가버리더라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아이 모습을 보면서 ‘저 아이에게 자전거를 한 대 사주면 얼마나 기뻐할까’라고 생각했는데 마을 기금으로 사연을 모집한다고 해서 냈지. 그게 뽑혀서 아이가 이제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쌩쌩 달리는데 얼마나 좋은지 몰라. 좋아서 눈물이 콱 나더라니까.”
마을 기금이 우리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민들은 더 열심히 활동한다. 마을 기금으로 매년 대방동 마을 축제도 연다. 6회째인 마을 운동회는 주민들이 김밥도 먹고 비빔밥도 먹으며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2019년 10월 마을 운동회를 마치고 찍은 단체기념사진.
8월 말, 고추·상추 등 판매할 작물을 모두 재배하고 난 뒤 마을 텃밭에 다시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는다. 11월 김장철에 알이 들어찬 배추를 수확해 이웃과 김장을 하고 수육과 함께 막걸리 한잔씩 나눈다. 이렇게 만들어진 김장김치 100상자는 더 어려운 홀몸 어르신, 장애가정, 돌봄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마을 주민이 함께 활동한 지 8년.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버렸고 주민들은 집 안에 머물며 세상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점점 더 기다림은 길어졌고,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답답하다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주민이 늘어났다. 마을상회를 운영하지 못하자 주민들은 생각을 모아 ‘직접 만나지 않고 택배처럼 마을상회 물건을 팔아보면 어떨까’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모든 가구 편지함에 주민들이 선호하는 때비누, 여성의류, 수제 빨랫비누를 판매한다는 전단을 넣어 집집마다 홍보했고, 9월 한 달 동안 판매했다.
복지관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이 제안한, 접촉을 최소화한 판매 아이디어 덕에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한 달간 판매 금액은 112만원이나 됐다. 코로나19로 단절된 지역 사회에서 서로 만나지 않아도 주민들과 함께 연대해 코로나로 그늘진 마음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대방동 주공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서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온다. 2020년 봄과 가을, 코로나 우울증으로 상실감과 공허함을 느끼는 주민들을 위해 해마다 진행하던 마을운동회 대신 ‘베란다음악회’를 열었다.
지금도 대방동 주공아파트에는 이웃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주민이 함께하고 있다. 신규 입주민의 정착을 위해 매달 반찬 나눔을 하는 ‘동네한바퀴’ 13명, 대방 주공아파트 통장단을 중심으로 지역 내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힘쓰는 ‘망원경’ 15명,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는 봉사 동아리 ‘다울’ 10명, 그리고 앞장서서 이웃을 돕고 나눔을 실천해 행복한 마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대방동 영구임대아파트 ‘마을일꾼’ 20명 어르신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컨테이너 ‘마을상회’라는 소중한 공간. 이들을 기억하는 한 공동체 정신은 우리를 계속 따뜻하게 보듬어줄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대방동의 아름다운 공동체와 이웃과의 믿음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지역 주민들은 멈추지 않고 활동한다.
2019년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텃밭을 가꾸다 간식을 먹고있다.
“컨테이너 마을상회, 주민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해” 인터뷰 | 박인철 대표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고 마음 뿌듯합니다. 내년부터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채소 가꿔 수익금 많이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박인철 마을텃밭 반장) “너무 기쁘고 컨테이너 마을상회 번창하길 바랍니다.”(이복수 컨테이너 마을상회 반장) 동작구 대방동 대방주공1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4일 행복둥지 공모전에서 상을 받게 된 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박인철(65) 마을텃밭 반장 겸 반상회 대표, 이복수(81) 컨테이너 마을상회 반장, 윤상욱(83)씨, 김점수(77)씨, 김고막례(76)씨 등 아파트 주민 5명이 단지 내 있는 대방종합사회복지관에 모였다. 대방주공1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 모임인 반상회(반듯한 세상을 만드는 모임) 내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대방주공1단지 아파트는 1993년 925가구가 입주한 임대아파트로 고령자 주민 비율이 높은 곳이다. “아파트 초기에 만든 테니스장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려 악취가 나고 모기도 들끓었죠. 그래서 주민들이 모여 논의한 끝에 텃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박인철 반상회 대표는 “2013년 주민들이 모여 마을과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했다. 주민들은 가장 먼저 냄새나는 ‘쓰레기장’을 마을텃밭으로 바꾸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지금은 쓰레기장으로 변했지만, 애초 아파트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테니스장이었던 곳이다. 언제부터인가 쓰레기가 쌓이고 잡풀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만든 텃밭에서 상추, 쑥갓, 고추, 배추, 무 등 다양한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농산물은 저렴하게 주민들에게 판매했다. 그리고 가을에 수확한 배추로 김장해 홀몸노인과 장애인 가정에 기부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모은 기금으로 마을 운동회도 열고, 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컨테이너 사용 허락을 받아 ‘컨테이너 마을상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마을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 주민 기증품,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저렴하게 판매했다. 이복수 반장은 “이런 노력으로 1500만원 이상 마을 기금을 축적했다”며 “올해도 매월 60만~70만원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컨테이너 마을상회는 상점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들러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구실도 톡톡히 한다. 주민들은 반상회 안에서 마을텃밭, 마을상회, 동네한바퀴, 망원경 등 소모임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마을텃밭은 텃밭에서 작물을 가꾸는 모임, 마을상회는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마련해 기금을 적립하는 모임, 동네한바퀴는 단지 내 어려운 이웃이나 새로 이사 온 이웃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주는 모임, 망원경은 새로운 사각지대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 해결 방안을 찾는 모임이다. 박 대표는 상금을 받게 되면 “우선 마을텃밭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텃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의 힘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겠다”며 “앞으로도 주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활동을 열심히 해가겠다”고 했다.
지난 11월25일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현장실사단이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영상으로 실사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배주연 대방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현장실사 조유영·이예휘 한국사회주택협회 회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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