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지대 된 공원 되살리고, 아이들 밝은 마음도 키워내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ㅣ 양천구 신월동 한아름어린이공원 가꾼 ‘우리동네 빛내라’ 팀

등록 : 2020-12-10 15:57 수정 : 2020-12-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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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민들 쉼터·놀이터였던 공원

7~8년 전 놀이기구 철거되며 흉물로

아이들에 “거기 절대 가지 말라” 당부

19년 양천마을공동체 사업 공모 계기

주변 엄마 모여 공원 살리기 사업 시작


‘쓰레기 줍기’부터 시작하자 마음 모여


70대 어르신 스스로 잡초 정리 나서고

시간 지날수록 주변 격려·도움 커져

아이들, 공원 돌멩이에 예쁜 옷 입히고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 스스로 치워

지난 여름 우리동네 빛내라 팀이 코로나19 상황에도 조를 나눠 새롭게 만든 폐타이어 놀이터 겸 의자.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2019년 상반기까지 우범지역이 되어 버린 곳이지만, 이 공원이 우리 동네에서 좋은 공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는 정자와 의자, 드넓은 나무 그늘, 그리고 다양한 놀이기구까지…. 동네 아이와 주민들 쉼터이자 놀이터였던 아주 훌륭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7~8년 전부터 놀이기구들이 하나둘 철거되면서 사람 발길이 점점 끊기게 됐고 어느새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흉물스러운 쓰레기장으로 어둡게 변해갔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할 수밖에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며 머리를 맞댔다. 그러다 2019년 8월, 양천구 마을공동체 ‘생생마을터’ 마을사업 공모에 마을 가꾸기 사업이 떴다. “이 사업이라면 한아름어린이공원을 다시 아름다운 쉼터로 바꿀 수 있겠네!”라며 공원 가꾸기에 응모했다. 공원 주변에 거주하는 엄마들을 하나둘 모아 사업에 지원했고 마침내 최종 선정됐다.

기쁨도 잠시, 이 분야에 기초 지식이 전무했던 우리는 막막하기만 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역할 분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게 어렵기만 했다. 함께할 인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쓰레기 줍기’라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펼침막과 전단을 만들어 동네 이곳저곳에 홍보를 시작했다. 복지관에도 비치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아파트 도서관, 지역센터를 대상으로 사업 내용을 알렸다. 그러다 깜짝 놀란 사실은, 우리처럼 어린아이들을 둔 30~40대 주부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은 물론 이곳에 오래 거주한 60~70대 어른들까지, 많은 주민이 이곳을 가꾸는 것을 ‘풀지 못한 마을 과제’로 생각해왔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우리가 하는 활동을 적극 응원해주셨고, 참여자로 함께하겠다는 분도 한 분 두 분 생겨났다.

“작은 것부터 해보자!” 주민들과 함께 하는 쓰레기 줍기 캠페인

아침 공기가 제법 선선해지던 9월, 드디어 ‘한아름어린이공원 쓰레기 줍기’ 첫 번째 날이 밝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찾은 공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암울했다. 입구 펜스부터 흉측하게 뽑혀 있었고 잡초는 어른 허리춤까지 무성히 자라 있었다. 곳곳에 깨진 유리, 담배꽁초, 녹슨 철조망, 곰팡이 핀 구조물이 널려 있었다. 압권은 산처럼 높이 쌓인 쓰레기였다.

눈앞에 펼쳐진 고행길에 모두 숨죽여 한숨만 내쉬었다. 이날 아이들과 함께 주운 쓰레기는 100리터 대형 비닐봉지 4개를 가득 채웠고, 비닐에 담을 수 없어 따로 모아야 했던 대형 폐기물도 한가득 쌓였다. 막막하기만 했던 쓰레기 줍기가 무사히 끝났고, 깨끗해진 공원을 보며 우리 마음도 상쾌해졌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바로 돗자리를 깔아 투호, 비석치기 등 우리 전통놀이와 세계 전래놀이를 시전하고 동네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깨끗해진 공원에서 신나게 놀아볼까?”

10여 년 만에 한아름어린이공원이 다시 제구실하게 된 것이다. 하하호호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들리자,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곳을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공원에 들어와 사진을 찍고, 깨끗해진 정자에서 쉬어가기도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성공적인 첫 캠페인이었지만 행사가 끝난 뒤 가장 아쉬웠던 건 어른 허리춤까지 올라오던 무성한 잡초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9월 중순 2회 행사 전날, 그 잡초가 말끔히 정리돼 있는 게 아닌가! 잡초가 사라지자 모기를 비롯한 해충도 사라졌고 공원이 훨씬 넓고 깨끗해졌다.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공원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을 늘 지나다니던 70대 어르신께서 우리가 공원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직접 잡초를 정리해주셨던 것이다. 캠페인이 회를 거듭할수록 주변으로부터 격려와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호스를 대주겠다던 미용실 원장님, 감사하다며 아이스크림을 봉지 가득 가지고 오신 마트 사장님…. 우리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알록달록 색으로 채워진 공원, 이제는 ‘모두의 공원’으로

단풍이 알록달록해지던 10월, 우리는 어린 자녀들과 함께 공원 화단을 가꾸기로 했다. 아이들은 작은 고사리손으로 직접 국화꽃 씨앗을 심었고, 매주 물을 주며 화단을 가꿨다. 수도가 없어 꽃을 키우기 쉽지 않지만, 아이들은 집에서 물을 받아 오면서까지 지극정성으로 공원을 가꿨다. 공원 곳곳에 버려진 돌멩이에도 아크릴물감으로 예쁜 옷을 입혀 ‘나만의 돌’을 만들었다. 아이들 작품을 입구에 전시하자 공원이 더욱 화사해졌다.

아이들은 스스로 가꾼 이곳에서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 공원을 깨끗하게 한다. 모두가 피해가던 우범지역에서 틈만 나면 들르는 ‘모두의 공원’으로 바뀌었다.

한아름어린이공원 안에 새롭게 진행하는 벽화 작업을 돕고 있는 양천구 주민.

부모와 함께 하는 공원 가꾸기, 아이 ‘인성 교육의 장’으로

2020년 7월에는 <아리랑TV>에서 우리 활동을 취재했다. “이런 활동을 왜 하는 거예요?”라는 취재 기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우리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이렇게 깨끗이 청소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공원을 이용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한지…. 부모와 함께 공원을 청소하는 동안 공원만 깨끗해진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 마음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건강하고 밝은 마음이 심어진 것이다.


코로나19로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우리 활동에도 이따금 어려움이 찾아온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매주 온라인으로 모여 추후 활동에 대한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지난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고 있다. 캠페인 당일에는 아이들을 소규모 인원으로 나누어 마스크 배분, 소독제 비치, 체온 측정 등 방역수칙을 엄격히 준수해 조심스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년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우리 아이들과 주민들이 더는 아름다운 쉼터를 잃지 않도록 우리 동네 모두의 마음을 가득 담아 만든 이곳을 지켜나가려고 한다.

2019년 9월 양천구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 뒤 단체사진.


엄마 세 명의 자발적 활동, 마을 주민들 마음 움직여

인터뷰 | 정해란 대표

“가장 기쁜 것 중 하나는 많은 마을 사람에게서 한아름공원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양천구 신월동 ‘우리동네 빛내라’ 팀의 정해란 대표는 한아름어린이공원을 가꾸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으로 ‘마을 주민들 마음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점’을 꼽았다. 2019년 하반기 주부 세 명이 시작한 일이지만, 한아름어린이공원의 정상화가 10대에서부터 60~70대까지 많은 마을 주민이 원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6년 전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때 이미 한아름어린이공원은 사용하지 않는 공원이었지만, 정 대표는 ‘왜 좋은 공원을 저렇게 버려둘까’라는 의문만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는 공원에 들어가는 것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 대표는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공원을 바꿔보자는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2019년 양천구 마을공동체 ‘생생마을터’ 마을사업 공모에 함께 응모한 신미선·최혜임씨가 그들이다. 세 사람은 모두 양강초·신남초·강서초 등 주변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이면서, 학교에서 시간제로 인성 교육 등을 하는 선생님이다. 세 사람은 서로 알게 된 뒤 2018년에는 양천구청에서 공모한 우수 동아리에 선정됐다. 이때 지원받은 상금 80만원으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인성 교육을 했다. 그때 서로 확인한 신뢰를 바탕으로 2019년 하반기 한아름어린이공원 살리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그러나 이렇게 3명의 엄마가 시작한 한아름어린이공원 살리기 프로젝트는 금세 공원 주변 주민들의 마음을 묶는 상징이 되었다. 이들이 자녀를 포함한 초등학생들과 함께 2019년 9월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본 뒤 마을의 70대 어르신이 직접 잡초를 정리해주신 것이 그중 한 사례다.

또 양천구의 50~64살 독거남인 나비남(‘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뜻)들도 6월6일 대청소 때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공원 소독을 도와주는 등 어린이공원 살리기에 도움을 주었다. 양천구청에서도 7~8월부터는 정기적으로 공원을 청소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등 한아름어린이공원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정 대표는 이런 공감의 마음들이 회원 확대로도 이어져 현재 ‘우리동네 빛내라’ 회원은 100명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정 대표는 “이런 열정과 사랑이 모인 덕에 올해 코로나 국면 속에서도 방역 지침을 지켜가면서 지난 8~9월 폐타이어를 이용해 ‘타이어 쉼터’ 등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실사를 맡았던 한국사회주택협회 윤은지, 윤창섭 회원은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초기 가족들의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주민 관계를 향상해온 사례”라며 “이런 주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구청과 마을 주민, 지역 내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좋은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상금은 “공원 무대 설치나 공원 의자 제작에 쓰였으면 하지만, 함께 공원 정상화 사업을 추진했던 분들과 상의해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10월 아이들이 국화꽃 등을 화분과 화단에 심으면서 공원 가꾸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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