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풀에 지치느니, 풀과 함께 농사지어 볼까?

일본 아카메자연농학교 탐방기 "풀과 작물은 경쟁관계가 아니라 상생관계"

등록 : 2016-08-25 15:21 수정 : 2016-08-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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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함께 작물을 재배하는 법을 익히는 일본 아카메자연농학교는 1991년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문을 열었다. 1 아카메자연농학교 전경. 기장을 비롯해 여러 작물이 풀밭 속에서 자라고 있다. 2 김매기를 하는 아카메자연농학교 회원들. 3 일본에서 자연농을 처음 시작한 가와구치 요시카즈 씨가 풀과 함께 자라는 수박, 참깨를 가리키며 자연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8월을 농한기라고 하지만, 농약을 쓰지 않는 텃밭 농부들에게는 끔찍하다. 올해처럼 35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 지열까지 더하면 밭은 40도를 훨씬 넘는다. 1~2주만 건너뛰어도 풀은 이랑 고랑 할 것 없이 장성을 쌓아버린다. 이런 형편에 가을 김장 농사를 위해 풀을 걷고, 밭을 갈고, 퇴비 넣고, 밭을 고르는 일은 근본적인 회의까지 들게 한다. ‘계속 지어 말어?’

30년 자연농 논에는 벼가 왕성히 자라

지난 8월13일 1박2일 일정으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진이 일본의 아카메자연농학교를 방문했다. 풀과 함께 작물을 재배하는 법을 익히는 학교다. 채집과 농경의 경계에서 사람 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농사법이다. 단순히 풀을 뽑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밭을 갈지도 않고, 퇴비도 넣지 않고, 비닐 등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야 먹거리를 얻을 수 있을까? 여린 작물들이 어떻게 저 기고만장한 풀들을 이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뼛속 깊은 생존경쟁, 적자생존 논리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아카메학교 농장은 결실을 앞둔 잎채소, 열매채소, 곡류로 풍성했다. 논에서는 벼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수박밭에서는 어른 머리통만 한 수박들이 풀숲을 침대 삼아 누워 있었다. 생강잎은 무성했고, 가을 당근이 벌써 연두색 잎을 파랗게 밀어올리고 있었다. 고구마 줄기는 풀들의 기세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고, 수수는 풀이 자라건 말건 늘씬하게 뻗은 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란 참외나 수박은 달고 아삭하고, 향긋했다.

모든 밭이 그런 건 아니었다. 연륜에 따라 작물의 성장세는 크게 달랐다. 30년 정도 자연농으로 지은 논에서는 벼가 왕성히 자라고 있었지만, 4년째라는 논의 벼는 수확하기 힘들어 보였다. 다른 작물 밭도 마찬가지였다.

자연농의 이치는 간단하다. 풀과 작물은 적자생존의 경쟁관계가 아니며, 서로 돕는 상생관계라는 것이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듯이 상대를 제압하려는 식물도 있다. 뿌리 번식 식물이나 덩굴식물이 그런 경우다. 이런 식물은 뽑아야 한다. 다른 풀들은 작물보다 웃자랄 정도가 되면 10㎝ 정도 남기고 낫으로 베어 그 자리에 덮어둔다. 이런 과정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잎이 잘려나간 풀은 뿌리가 약해져 자라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베어낸 잎은 썩어서 양분이 된다. 몇 차례 베어 주면 뿌리는 죽어 거름이 된다. 살아 있는 뿌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무기질 등을 끌어올려 제공하거나, 굳어버린 땅을 부드럽게 갈아 준다.


파종 때는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땅을 갈아엎고, 풀을 남김없이 뽑아버리는 정도의 개입은 아니다. 모종을 내어 본밭에 옮겨 심는 배추도 이 학교에서는 직파했다. 우선 뿌리 번식 식물이나 덩굴식물을 뽑아낸다. 파종할 자리마다 풀을 지름 한 뼘 정도 뽑은 뒤 흙을 손으로 다지고 배추씨 4~5알을 넣는다. 흙을 살짝 올리고 다시 한 번 살며시 다져 준다. 풀씨 없는 생풀을 베어 덮어 주고 물을 한 바가지 주면 된다.

가을 당근은, 넓은 생강 이랑 양쪽 가장자리에 20㎝ 깊이의 작은 고랑을 낸다. 이때도 뿌리 번식 식물은 뽑고 고랑을 괭이로 방아 찧듯 다진다. 다진 흙 위에 당근씨를 뿌리고 흙을 살짝 덮은 뒤 다시 한 번 흙을 덮고 다진다. 풀씨가 없는 생풀을 덮어 주고 물을 한 바가지 주는 건 배추 파종 때와 같다. 가을 감자 파종도 배추와 같았다.

벼는 4월에 모판을 만들고 벼가 한 뼘쯤 자라면 논으로 옮겨 심는데, 50㎝ 간격으로 풀을 손으로 눕힌 뒤 한 뼘쯤 자란 벼를 하나씩 심는다고 한다. 풀은 뿌리를 뽑지 않고 거름이 되도록 낫으로 베어 준다.

안전하고 건강한 작물이 우선

일본의 자연농은 가와구치 요시카즈가 1970년대 처음 시작했다. 무농약, 무비료, 무비닐 그리고 무경운 등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가와구치 선생은 자신감이 생기자 1991년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아카메자연농학교를 열었다. 30년 이상 된 그의 밭에서는 지금, 비료와 농약을 쏟아붓는 관행농의 80%쯤 되는 소출을 낸다. 병충해 피해도 없고, 들이는 것도 별로 없고, 안전하고 건강하니 소출량으로만 자연농과 관행농의 우열을 따지는 건 어리석다.

한국의 농부 손님을 맞은 가와구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 안의 생명을 보는 것이 농사의 시작입니다.” 생명을 기르는 것, 생명과 생명의 조화를 이루는 것, 다투는 게 아니라 공생하고 상생하는 것이 농사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위적인 투입을 최소화해, 자연의 뜻에 맡기고 그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희수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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