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아버지에게 초점 맞춘 복지 정책 나와야 할 때”

전국 최초 '아버지센터' 연 고도원씨

등록 : 2016-09-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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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문화재단 고도원 이사장이 9월1일부터 서초구 방배동에 문을 열, 아버지 전용 놀이터인 ‘아버지센터‘ 운영을 맡았다. 25일 오전 방배열린문화센터에서 고 이사장이 아버지들의 신명을 돋울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방배열린문화센터 5층에 전국 최초로 아버지를 위한 힐링센터가 문을 열었다. ‘서초구 아버지센터’(www.papapower.com (02)2155-8400)가 그것이다. 서초구가 공간과 재정을 지원하고 프로그램 진행 등 센터 위탁 운영은 고도원(65) 아침편지문화재단 대표가 맡았다. 인터넷 메일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 대표는 명상치유센터 ‘깊은산속 옹달샘’을 설립해 10여 년째 힐링 사업을 펼치고 있는 명상치유 전문가이다. 고 대표를 만나 아버지센터 설립 동기와 의의를 들어봤다.

- 아버지센터를 열게 된 계기는?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깊은산속 옹달샘’을 충북 충주에 세워 10여 년째 운영 중이다. 300여 명이 숙식을 같이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다. 지난해 개인적 친분이 있는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휴가를 겸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는 감명을 받아 서울 한복판에 ‘고개 숙인 아버지’들의 기를 살려 줄 수 있는 센터 운영을 제안했다. 고도 경쟁사회 속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아버지에게 열정과 자긍심을 찾아 주는 일이 시급한 사회적 과제라는 인식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서초구에 따르면 한 달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참가자를 모집한 ‘서초구 아버지센터’는 신청자 쇄도로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조기 마감됐다. ‘아버지 부재’ 시대를 역설적으로 상징하는 듯한 반응이다. 

요즘 아버지는 집 밖에서는 치열한 경쟁, 집 안에서는 생계 부양자 역할을 요구받으면서 갈수록 아버지로서 정체성을 잃고 있다.

“남자는 20대부터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아버지 공부를 해서 아버지가 된 남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냥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아이 낳고 생활하면서 아버지로 불린다. 그러다가 지쳐 나자빠져도 쉬는 법조차 모르고 외톨이로 늙어가기 일쑤다.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 복지 정책이 나와야 할 때다. 서초구 아버지센터가 그런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 아버지센터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기본 개념은 무엇인가?

“5가지 P로 요약했다. 사랑의 힘(Power), 꿈을 향한 열정(Passion), 존경받는 아버지(Pride), 계획 있는 삶(Plan), 그리고 노는 즐거움(Playing).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사랑, 꿈을 갖게 하는 열정, 가장의 긍지가 아버지 가슴에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노는 즐거움을 아는 아버지. 이 다섯 가지 생각과 감정을 아버지의 가슴에 심어 주려 한다.”

요즘 아버지들은 정말 놀 줄 모른다.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그러다가 이상한 실수도 저지르고….

“그렇다. 일하고 성취하는 기쁨도 크지만 일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노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어떻게 노는 게 잘 노는 것인지 모른다. 아버지다운 풍류가 사라지고 있는 거다. 시 한 수 읊고 기타 한 곡조 멋지게 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을 아버지센터에서 키워 주고 싶다.”

- 어떻게 프로그램화할 수 있을까?

“지금 여러 프로그램을 짜놨지만 이게 완성은 아니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모이고, 좋은 사람들이 만나면 뭔가 참신한 게 나오지 않는가? 그들이 집단지성을 이루고 서로 지적 네트워크로 이어지면서 프로그램도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9월에 개관한 아버지센터는 ‘꿈너머꿈 5P 아버지캠프’(토요일 5주 과정), ‘잠깐멈춤 2P 아버지캠프’(토요일 2주 과정) 등 주말 프로그램과 발반사 치유 마사지, 자연농 건강식 요리, 통나무 치유명상, 요가, 아트테라피, 비채(비움과 채움) 커피 바리스타 같은 주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예상되는 운영상의 어려움은?

“역시 재정 문제다. 구청과 손잡고 하는 일이지만, 막상 해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시민 프로그램을 비싸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이대로 가 보겠다. 깊은산속 옹달샘도 처음에는 다들 어렵다고 했지만, 돈으로 환산한 경제가치가 7000억 원이다. 집단지성의 힘이고 뜻 있는 분들의 도네이션(기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센터는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사업이니 반드시 타개책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앞으로 계획은?

“일을 벌였으니 최선을 다해 보겠다. 내가 6학년5반(65살)인데, 그간의 경험을 살려가다 보면 귀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웃음) 머지않아 서울시장과 대통령이 서초구 아버지센터를 찾을 날이 반드시 올 거다. 아버지센터는 장기적인 국가 운영 측면에서 고령사회를 유지하는 사회적 비용을 선제적으로 절감하는 획기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걸 알고도 안 찾아오면 안 되지 않겠나.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잘 만들면 기가 막힌 국가 시스템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탄생하는 거다. 기자님도 전도사가 되어 주세요. 이것도 하나의 ‘운동’ 아닙니까?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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