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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바벨탑, 마천루 강국 한국

등록 : 2017-06-01 16:11 수정 : 2017-07-2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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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란 말 그대로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건물을 말한다. 탑이나 조형물 등을 제외한 50층 이상 혹은 20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건물을 흔히 마천루라고 한다. 중국은 마천루가 가장 많은 나라로, 200m 이상 높이의 건물이 503개나 된다. 그다음으로 미국이 181개, 대한민국은 58개로 4위에 올라 있다.

2016년 한해 동안 전 세계 11개국에서 마천루를 지었고, 그중 6할이 넘는 84개가 중국에 있다. 이러니 “중국이 세계의 타워크레인을 모두 싹쓸이하네.” “건자재 가격 인상의 원흉이네.” 하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도 작년에 6개를 건설해 마천루 건설량 4위에 올랐다. 그 11개국에서 미국과 오스트리아 두 나라를 제외한 9개국이 아시아에 있고, 전체 건설량의 84%를 차지할 정도니, 아시아가 세계 건설 산업을 떠받치고 있음을 실감한다.

두바이 부르즈할리파 828m 세계 1위

현재 세상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아랍에미리트의 도시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할리파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828m 높이의 163층 건물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200m 높이를 넘긴 건물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1909년에 건설된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라이프 빌딩이었다. 그러나 300m의 벽을 깬 것은 1931년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란 왕좌를 넘겨주기까지 40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다.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는 1971년에 400m를 넘어서며 그 왕좌를 물려받았다.

이 건물들 모두 한번쯤은 킹콩이 기어오르고 모래 폭풍 속의 톰 크루즈가 매달리며, 영화 속에서 현대문명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했고, 세계 최고 타이틀을 보유하며 각자의 시대를 풍미했다. 이후 25개 이상의 건물이 왕위 찬탈전을 벌여왔고, 21세기 들어서는 그 경쟁이 더욱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마천루의 꼭대기 부분은 보통 각종 기계실과 안테나 등 관리 운영에 필요한 공간들이 자리해 하늘을 향해 치솟는 형상으로 디자인되고는 한다. 그런데 높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키높이 깔창을 얹는 꼼수쯤으로 의심되는 사례들도 자주 발견된다.

사실 부르즈할리파도 거주 층까지의 높이는 585m에 불과해서 꼭대기의 최고 높이와는 243m나 차이가 난다. 순위 3위인 사우디 메카로열클락타워호텔의 최고점은 5위 롯데타워(555m)보다 46m 높은 601m이지만 실제 거주 높이는 롯데타워보다 4m가 낮다. 따라서 거실 높이로만 순위를 따지면 우리나라의 롯데타워가 세계 4위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자고 나면 여기저기 더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니 이런 식의 등수 싸움은 부질없다. 2020년에 인류 역사상 1㎞ 높이의 벽을 최초로 깨고 높이 경쟁의 신기원을 이룰 제다타워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완공될 예정이고, 2020년대 초만 돼도 중국 각지에서 비 온 뒤 죽순마냥 올라오는 마천루들이 롯데타워를 10위 밖으로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예상도 계획 중인 프로젝트들은 제외하고, 현재 건설 중인 것들만 따진 것이니 애초에 순위에 대한 미련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세계 100대 마천루 높이 80m나 높아져

재미있는 것은, 2000년 이후에 건설된 전 세계 모든 200m 이상 건물의 높이 평균은 거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2010년 이후로는 약간의 내림세마저 보인다. 그런데 이에 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100개의 평균 높이는 해마다 상승세를 거듭해 21세기 들어와서만 80m나 높아졌다. 마천루의 실용적 필요에 의한 높이는 230m 남짓인데, 높이 경쟁은 이와는 관계없이 가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천루는 기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대공사가 따르는 사업이라, 계획할 때 합목적성과 경제성을 가장 먼저 따져야 한다. 다시 말해 건물이 지어질 도시의 환경과 인구밀도, 경제, 부동산 가치 등 실제적 지표가 실행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일반적인 건설 사업에서는 그러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최고 높이를 다투는 마천루들의 개발은 쉽게 손꼽을 수 있는 기본 여건들과 딱 떨어지는 상관관계를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인구밀도 높은 한국이나 중국,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마천루가, 인구밀도도 크게 높지 않고 끝없는 모래밭에 인프라마저 열악한 지역에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거나, 뚜렷한 현실적 용도가 아닌 어떤 이유로 추진되기도 한다. 떠오르는 국가의 권력 또는 문화적 과시? 세계화에 편승? 세계적 존재감에 도전하는 기업 또는 지역·정부의 욕구? 하지만 경제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에 계획되었던 마천루가, 완공될 즈음 불어닥치는 불황으로 건축주는 물론 사회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 ‘마천루의 저주’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그저 남의 잔치에 괜한 트집으로 보기에는 사안이 무겁다.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인류는 알게 모르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왔다. 최소한 기술문명의 발전 면에서는 그러했다. 마천루 건설이 막아설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그것에 반대할 기회도 없이 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 후세에게 덜 미안하도록 효용 높고 안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켜가야 한다.

건축의 가치는 결코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 유럽 나라 중 완성된 도시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밀쳐두고 마천루를 옮겨 심으려는 나라는 없다. 마천루 경쟁은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아시아와 중동 산유국들의 리그이고,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은 그 소용돌이에서 저만치 비켜 서 있다. 마천루의 개발은 존재감의 과시보다는 논리적 접근이 먼저고, 건축주와 건축가는 사회적 편의를 최상위에 두어야 한다.

하늘에 닿으려면 걸맞은 능력과 무거운 책임이 따르고, 바벨탑은 두드리고 또 두드려 건너야 할 조심스러운 돌다리다.

글·그래픽 안준석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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